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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93>"두 얼굴의 풀" 쇠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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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93>"두 얼굴의 풀" 쇠뜨기

입력
2004.0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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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풀렸습니다. 하지만 다시 추위가 찾아올 것이고, 봄이 오기까지 찬 기운이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내 양지 바른 둔덕에 부드러운 햇살이 퍼지고 꼬물꼬물 새싹들도 움직이기 시작하겠지요.쇠뜨기는 이즈음 만나는 풀입니다. 고향이 시골이어서 어린 시절 꼴이라도 베고 다니던 분이라면 누구나 알법한 식물이지요. 쇠뜨기는 소가 심드렁하게 논뚝을 거닐며 뜯어먹는 풀이라 해서 쇠뜨기가 되었답니다. 시골 사람들은 이른 봄에 나타난 모양이 뱀을 닮아서, 혹은 이 식물이 나는 곳에 뱀이 많아 뱀밥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다 보면 쇠뜨기 생김새에 대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분이 많습니다. 이른 봄에 보이는, 별명에서 언급했던 뱀머리를 닮은 연한 갈색의 식물체는 번식에 필요한 기관으로 우리는 이를 '생식경(生殖莖)'이라 부릅니다. 언뜻 보면 식물인지 의심도 들지만, 줄기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간에 진한 갈색의 비늘조각 같은 것이 있는데 이 부분이 바로 잎입니다. 모두 4장이 달려있지만 광합성을 하는 본래 기능이 없습니다. 퇴화한 잎이죠.

줄기 끝에 달리는 부분은 번식에 꼭 필요한 포자가 달리는 포자낭수(胞子囊穗)입니다. 자세히 보면 이 부분엔 벌집같이 육각형들이 모여 있는데 익으면 벌어지고 그 속에서 포자가 나옵니다. 포자에는 각 4개씩의 탄성이 있는 줄이 있어 대기가 습한지 건조한지에 따라 신축운동을 하면서 녹색의 포자를 멀리 보내며 종족을 번식시키는 것이지요.

이런 비상도 다 끝나고 나면 이 갈색 줄기는 사라지고, 우리가 비로소 식물임을 느낄 수 있는 녹색 개체가 다시 생겨납니다. 엽록소가 있어 초록으로 보이며 광합성을 해서 영양분을 만드는 일을 하지요. 그래서 이를 '영양경(營養莖)'이라고 부릅니다. 쇠뜨기의 생식경과 포자경은 옆에 있어도 같은 식물인지를 상상하지 못할 만큼 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원시 식물의 특징이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등 식물과 달리 따로 있던 기관이, 관리하기 쉽도록 하나의 줄기에 영양을 담당하는 초록잎과, 생식을 담당하는 꽃이 함께 달려 있습니다. 다양성을 높이고 유전정보를 더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포자가 아닌 종자로 만들게 되고, 여기서도 무작정 많이 만들어 바람에 날려 보내는 위험성 높은 방식보다는 특정한 타깃을 만들고 곤충의 힘을 빌어 안정성 높은 방식을 골라가게 됩니다. 물론 이러기위해 색과 향기는 물론 가지가지의 장치들이 등장하기 마련입니다.

쇠뜨기의 모습을 보자니,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허겁지겁 힘겹게 살아가는 삶을 과감히 포기하고 다소 불편하지만 간소하고 평화로운 자연으로 돌아가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해가 갈수록 그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군요.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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