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여론은 가끔 정제되지 않은 선동적 용어나 강령(綱領)으로 국민을 오도하며 권력을 상징 조작한다. 첫째는 서로 다른 가치체계를 하나의 용어로 단일포장함으로써 이해를 어렵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논리적으로 비교할 수 없고, 비교해서도 안되는 개념을 마치 정반대의 개념인양 대칭시켜 사실인식과 판단을 엇갈리게 하는 경우이다.첫째의 예는 광복 후 자유진영과 공산진영이 서로 자기쪽이 진짜 민주주의라고 주장한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없는 국민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사회주의 체제를 개인주의에 기초한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이다.
두번째의 예는 1961년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등 군부가 '반공을 국시(國是)'로 공약한 것이다. 그 당시, 반공은 좋으나 그것이 국시여야 하는지 의문이 컸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국정근본 이념, 즉 국시는 자유와 민주이고, 반공은 체제를 방위하기 위한 전략이다. 전략은 안보상황에 따라서 바뀌기 마련이며 결코 영속성을 지녀야 할 국시는 아닌 것이다.
두번째 경우에 해당하는 또 다른 예는 지난해 10월 이후 이라크 추가파병을 둘러싼 청와대 내의 '자주외교국방'과 외교통상부의 '동맹외교국방' 간의 충돌이다. 실제로 이 두 기관 내에 이처럼 각각 다른 외교안보관을 지닌 집단이 존재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따라서 이를 최고권력자에 대한 불복종 또는 인격적 비판을 받는 것에 대한 응징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여하튼 이 갈등은 결국 윤영관 외교부장관과 라종일 국가안보좌관을 경질함으로써 자주파 주도로 막을 내린 셈이다.
그러나 자주와 동맹은 대칭개념이 아니다. 따라서 이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는 것은 논리적, 현실적으로 아귀가 들어맞지 않는다. 주권개념의 창설자로 알려진 프랑스의 J. 보뎅은 '주권은 독립국가의 대내적 최고성과 대외적 자주독립성'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다원적 국가론과 국제법 우위론의 영향을 받아 국가주권을 부인하는 이론도 있으나, 주권은 독립국가 고유의 대외적 가치이며 유엔(UN)도 모든 가맹국의 주권평등 원칙에 기초를 둔다.
따라서 자주는 주권국가의 절대필요조건이고 독립을 위하여 추구해야 할 이상이고 목표이다. 대외적 가치로 영속되는 것이어서 결코 포기될 수도 없다. 따라서 자주의 반대개념은 종예속이지 동맹이 아니다.
반면에 동맹은 주권국가의 안보를 위한 한 전략이다. '일정한 경우(causus foederis) 쌍무적 법적 원조 의무를 지는 국가간 조약으로 맺어지는 합의'인 것이다. 쌍무적 부담 의무가 없는 보호 또는 담보조약과는 다르지만, 그 반대개념은 자주가 아니라 비동맹, 반대동맹 나아가 집단안보이다. 예컨대 불평등 조약으로 일컬어지는 1953년 한미상호방위조약은 동맹조약이고 1945년 국제연합헌장, 1949년 북대서양조약 등은 집단안보조약이다.
결국 자주는 반미 또는 친북이고 동맹은 친미 또는 반공이라고 보거나, 자주는 국방을 약화시키고 동맹은 강화하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잘못이다. 또 자주파와 동맹파를 대칭시켜 일방이 상대방을 굴복시키려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자주적인 외교정책, 자주외교는 균형잡힌 실리외교'라고 주장하며 '실체 없는 자주파' 운운하는 것은 '정부의 대미 굴종외교'라는 비판을 비껴가기 위한 변명으로 보일 수 있다.
국민의 현실인식과 정책 판단의 기조를 뒤흔들 수도 있는 핵심적 용어가 부정확하게 마구잡이식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전문가와 언론은 이를 충분히 인식하여 잘못된 정강 정책을 바로잡아 국민들에게 정확한 판단이 가능하도록 개념을 정의하고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데 주력하여야 한다.
전 철 환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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