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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둑의 누이

입력
2004.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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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일 지음 문이당 발행·8,800원

송은일(40·사진)씨는 장편소설을 통해 여성의 삶을 그리는 데 집중해온 작가다. 세번째 장편 '도둑의 누이'에서도, 짜임새가 갖춰졌고 잘 읽히는 서사구조 속에 작가의 그런 주제 의식이 담겼다.

'도둑의 누이'는 30대 중반의 여성 한선재의 이야기이고, 그의 어머니인 임로사와 어머니의 어머니들의 이야기다.

정신이 온전하지 않아 집을 나갔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객사한 고운에게서 송현이, 영특하고 반듯해 지주의 총애를 받고 지주 손자와 혼례를 올린 송현에게서 진예가, 송현의 자식들 중 유일하게 제 명대로 산 진예에게서 로사가 나왔다.

그리고 딸을 잃고 정신을 놓아버린 로사의 업둥이 딸로 선재가 들어왔다. 화가인 로사가 그리는 것은 그가 듣고 꿈에서 본 집안 여성들의 얘기다.

소설 속 소설인 이 여성들의 이야기 바깥에 한선재의 사연이 있다. 찻집을 운영하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선재에게는 의붓오빠 한선묵과 사랑하다가 헤어져야 했던 과거가 있다.

그는 보안시스템을 관리하는 선묵이 도둑이 아닐까 의심하며 찾아온 형사 유장건과 새롭게 사랑에 빠진다. 아이까지 가졌음에도 결혼제도에 대한 압박감과 두려움 때문에 유장건의 청혼을 거절하는 선재에게서 여성의 비극의 역사는 되풀이된다.

'도둑의 누이'는 그러나 이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익숙하긴 하지만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준다. "아빠가 안 오면 우리끼리 잘 살자"는 선재의 말은 스스로에 대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개척해 나가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시간이 지난 뒤 만난 아이의 아빠에게 마음을 닫지 않고 선택의 기회를 주는 선재에게서 여성의 운명에 대한 분노 대신 화해와 공존의 방식을 모색하려는 작가의 따뜻한 시선을 만나게 된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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