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의 집에 들어서면서 내가 놀란 것은 어둠 때문이었다. 등 뒤의 찬란했던 가을 햇살과 극적인 대조를 이루는 그 집안 가득한 어둠은 눈을 침침하게 하는 듯했다. 예기치 않은 방문객을 맞기 위해 친구가 한 걸음 먼저 집에 들어가 거실이며 방마다 불을 켰음에도, 드리워진 커튼과 촉수 낮은 부분 조명으로 집안은 어슴푸레하기만 했다. 그 즈음 그 친구가 겪고 있었을 상실감과 좌절을 가늠해보며 그 어둠은 단지 빛의 결핍으로 다가오지 않았고, 그 집에 머무는 내내 마음 한 켠이 불편하고 안쓰러웠다.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그 친구에게 길고 긴 편지를 써서 부쳤던 기억이 있다.'하늘에 구름이 끼어 어두운 상태'라든가 '그늘도 그림자도 아닌 거무스름한 모습'을 일컫는다는 음예(陰)라는 말을 안 것은 그로부터도 한참 뒤의 일이었다. '음예공간예찬'이라는 책을 통해 음예라는 단어를 처음 대하면서, 물론 오래 전 방문했던 친구의 집을 먼저 떠올렸으나, 좀 더 다양한 종류의 음예가 우리 주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랐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서구 문물의 도입으로 거주 공간에서의 난방이나 조명, 화장실 따위 등에서 생활의 편리함, 청결함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어 이런 것들을 확고한 도시 일상의 풍경이라고 여겨왔다. 그런데 기실 이는 다소 어둡고, 낡고, 손때 묻고, 바랜 것들이 품어내는 음예의 멋이 사라진 결과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칙칙하고, 불편하고, 불결하다고 제쳐두어 사라진 옛것들을 복고 취향으로서가 아니라 아늑하고 아련한 그리움으로 새삼 되돌아보았다.
저자 다니자키 준이치로는 일본의 어스름한 창호지와 촛불에 일렁이는 어두운 공간, 오래된 다다미방의 나무결, 양갱이나 붉은 된장국과 검은 칠기그릇의 조화 등이 빚어내는 아름다움을 음예로 꼽고 있다. 문학가답게 그릇이나 과자, 종이 따위 소소한 것들에서도 서양의 그것들과는 다른 동양적인 고유의 느낌과 정서를 심미적으로 짚어보고 있다. 또한 그 작은 물건 하나하나에서 그윽하고 고요한 명상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데 이를 따라가며 책을 읽다보면 주위가 음예의 공간으로 변해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적막하면서도 다소 음울한 동양의 미적 전통이 화려한 서양 문명의 밝은 전깃불 아래 사라져갔음을 안타까워하며 일본 고유의 문화를 담담히 되짚어보는 이 책은, 일본의 그것들과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우리의 전통적인 것들을 까마득한 기억 속에서 불러내는 주술적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
/윤양미·산처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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