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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미들섹스

입력
2004.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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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리 유제니디스 지음·이화연 등 옮김 민음사 발행·전2권 각권 9,000원

그리스 신화의 헤르마프로디토스는 신들의 전령 헤르메스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자식이다. 열다섯 살 때까지 남자였다가, 그에게 한눈에 반한 님프가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신들에게 빌어 남녀한몸이 돼버렸다. 칼리오페 스테퍼니데스는 두 번 태어났다. 1960년에 여자아이로 세상에 나왔다가, 열네 살에 '5알파환원효소결핍증후군'이라는 진단과 함께 남자가 돼버렸다. 남성과 여성을 함께 갖고 있는 신화 속 헤르마프로디토스의 '21세기식 변주'인 셈이다. 2003년 퓰리처상 문학 부문 수상작인 제프리 유제니디스(44·사진)의 장편소설 '미들섹스'의 줄거리다.

'미들섹스(Middlesex)라는 제목은 상징적이다. 주인공이 사춘기를 보낸 디트로이트 주택단지의 이름이기도 하고, 어느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성의 가운데에서 서성이는 주인공의 고뇌를 가리키는 것이기도 하다.

모든 결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칼리오페의 비극은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비롯된다. 양성(兩性)은 근친이 흔한 외딴 집단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칼리오페의 조부모는 터키의 작은 마을에 살던 그리스인 남매 데스데모나와 레프티. 그들은 사랑에 빠져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들의 아들 밀턴은 육촌 테시와 사랑에 빠져 칼리오페를 낳았다. 그 자신 가족애가 끈끈한 그리스계인 작가가 들려주는 얘기는 '한 시대의 가족로망'이다. '미들섹스'는 그래서 개인의 혼란스런 내면 묘사에 머물지 않고 3대에 걸친 가족의 역사가 됐다.

더욱이 그 가족사가 1920년대부터 시작되는 미국 이민사라는 점에서 '미들섹스'는 의미 있다. 금주법 시대의 밀주산업, 흑인 인권운동, 그리스계 가족은 현금을 주지 않고는 집을 살 수 없는 부촌의 풍경, 그리스계 미국인으로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듀카키스의 선거운동 등이 소설에 담겼다. 고향 터키 산골을 떠나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에 자리잡고 포드 시대와 경제 대공황 등을 겪어온 그리스계 가족의 삶은 그대로 미국의 역사다.

칼리오페가 비극적 운명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한 인간이 자아를 찾아가는 통과의례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보편적이다. 그리고 미국에 뿌리내리려는 이민자 가족의 삶을 통해 미국의 사회사를 짚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미국적이다. 뉴욕타임스는 이 작품을 "20세기 현대사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각"이라며 "남성과 여성, 약자와 강자, 흑인과 백인, 구세계와 신세계, 전통과 현대과학 간의 격차, 그리고 운명과 자유의지 사이의 긴장과 투쟁"이라고 평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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