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톡스(Detox)란‘해독(解毒)’을 의미하는 영어‘Detoxification’에서 유래한 말. 전통적으로 동양의학에 숯, 소금, 물 등을 이용해 독소(유해 성분)를 빼는 개념이 있었으나 최근 서구 자연의학자들은 현대 문명이 유발한 오염물질을 가장 위협적인 독소로 겨냥, 디톡스 건강법을 주창했다.
즉 인체 면역계가 정화할 능력을 넘어선 각종 중금속, 미세먼지, 약품, 식품 첨가물, 과도한 설탕과 소금 등을 차단하고 자연주의적으로 치유하자는 주장이다. 이 개념은 현대 문명을 멀리하는 소박한 생활 방식으로 확장되고 있다.
달리기를 하더라도 시속 8㎞로 몇 분을 뛰어야 목표 칼로리를 소모할 것인지 계산하십니까. 간이 안 좋을 때, 술 깨는 데, 혹은 정력에 최고인 식품이 뭔지 줄줄 꿰십니까. 맛있는 집으로 소개된 식당은 한번쯤 찾아가 보십니까. 매일 아침 비타민제를 잊지 않지요. 그렇다면 당신은 분명 웰빙족입니다.
하지만 돈 주고 헬스 쿠폰은 끊으면서도 5층 사무실엔 갈 때엔 꼭 엘리베이터를 탄다면, 건강식품은 챙겨먹어도 담배를 끊지 못한다면, 마음을 정화하는 그림을 걸어놓고도 차분히 감상할 시간을 못 가진다면, 당신은 삶을 다시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른바 디톡스(ditoxification·해독)가 필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최근 라이프 스타일의 화두가 된 ‘웰빙’은 몸에 좋은 것만을 추구하는 플러스적 사고방식이죠.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정말 잘 살려면, 넘치는 문명의 찌꺼기를 정화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현대인은 필요한 것 이상의 먹을 것과 물건과 정보를 쌓아두고 살며, 자연 치유력이 수용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오염 물질에 노출돼 있습니다. 또 부족한 것이 아니라 넘치는 것이 우리의 몸과 마음을 탁하게 만듭니다.
기름진 패스트 푸드, 온갖 독소를 내뿜는 새 집, 쓰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는 불필요한 물건들, 이메일ㆍ인터넷ㆍTV를 통해 밀물처럼 내 삶을 비집고 들어오는 쓰레기 정보들, 경쟁과 욕심으로 인한 분노와 거짓…. 이것이 우리 삶과 마음의 독소입니다.
자, 이제 볼륨을 낮추고 좀 더 천천히 걸어보세요. 물건을 사기 전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세요. 저의와 배후와 득실을 따지지 않는 대화를 나눠보세요. 그리고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만 집중해보세요. 해독과 정화의 세계가 눈 앞에 열릴 것입니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사진=왕태석기자
■음식이 독이다
음식이 독이다? 역설적이지만 지금 이 말은 진실이다. 예전엔 잘 먹는 게 보약이었지만, 이제는 먹어서 생기는 병이 많다. 비만에서 시작돼 당뇨병, 고혈압 등으로 이어지는 생활습관병이 현대인의 주요 사망원인으로 떠올랐고, 아토피 피부염, 천식 등 알레르기 질환이 급증하고 있다. 대장암, 변비 등도 육류 중심의 식단으로 바뀌면서 생긴 현대병으로 꼽힌다.
그렇다면 이러한 독소를 어떻게 빼야 할까? 기름, 첨가제, 오염 성분 등을 한 번에 해독해 주는 식품은 없을까. '먹지 마 건강법'의 저자인 한의사 손영기(손영기 한의원) 원장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서 이를 한번에 해독하는 식품을 찾는다면 말도 안 되는 욕심"이라고 일갈한다. 즉 몸에 좋은 것은 일부러 찾아먹는 플러스적 발상보다 해가 되는 음식을 피하는 마이너스적 건강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손 원장이 환자들에게 먹지 말도록 하는 3가지 대표적인 금기 식품은 항생제로 키워지는 육류 방부제가 섞인 수입 밀가루 육류와 밀가루에 설탕, 소금, 첨가제까지 들어간 패스트 푸드다. 해독의 신비는 전통 음식에 있다. "한의학에서 해독은 맑고 탁함을 분별하는 소장의 기능에 달려있습니다. 소장에 이로운 음식은 된장 청국장 김치 등 발효식품과, 콩 마늘 연근 양파 등입니다." 손 원장은 개원한 후 3년 내내 조미료를 쓰지않는 한 식당을 정해놓고 된장찌개만 먹었다. 또 생된장을 물에 풀어 자주 마신다. 그는 "비용만 감당할 수 있다면 유기농 야채와 곡식을 먹고, 꼭 유기농이 아니어도 소박한 식단이 좋다"고 말했다.
서구에서는 주스로 독을 빼는 디톡스 법이 알려져 있다. 국내에 태극요법으로 알려진 폴라리티 치료법에 따르면 올리브유 3∼4큰술, 레몬즙 6∼8큰술, 마늘 3∼6쪽을 넣고 갈아 마시면 간 쓸개 콩팥 장을 깨끗이 정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처럼 혀에 가혹한 주스까진 아니어도 제철 과일과 야채를 갈아 마시면 배설을 돕고 항산화 작용을 하는 등 몸의 치유력을 높이는 데 좋다.
그런가 하면 국내에서 대표적인 디톡스 건강법으로 장청소(관장)와 단식이 시행되고 있다. 장에 숙변이 쌓이면 장 속 발효균이 늘어 독소가 생기고 이 독소는 혈액을 탁하게 만들며 면역력을 떨어뜨린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의사들 사이에 숙변의 존재에 대해선 논란이 많다. 처음 일본의 민간요법에서 시작된 숙변의 개념은 대장 벽에 찐득찐득하게 붙어있는 변 찌꺼기라는 의미지만 배출되지 않고 끼어있는 숙변이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희대한방병원 재활의학과 송미연 교수는 "다만 장운동이 활발하지 못하면 적절한 시간에 대변이 배출되지 못해 체내 독소로 작용할 수는 있다"며 "대장을 씻어주면 만성 변비, 여드름, 복부비만에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송 교수는 "장세척을 자주 하면 인체의 자연스러운 배출반사 기능이 떨어지고 대장내 정상적인 세균의 균형이 깨지는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으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단식은 가장 저렴한 해독요법이다. 푹 쉬면서 하루동안 물만 2∼4㏄ 먹으며 금식하거나 3일간 유기농 과일과 채소 주스를 충분히 먹으며 금식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당뇨병, 섭식장애, 알코올 중독, 체중미달이거나 질병에서 회복중인 환자는 피해야 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병든 집 독 빼기
회사원 박수경(29)씨는 지난해 7월 중학교 때부터 살아온 아파트를 나와 새로 지은 원룸으로 이사했다가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미열과 몸살이 떨어지지 않는 것은 이사 후유증이라고 치더라도 팔다리에 빨갛게 돋아난 두드러기는 끔찍했다.
"피부과에 갔더니 알레르기성 피부염이라 하더군요. 평생 알레르기 걱정은 해본 적이 없는데 어이가 없었죠. 약을 먹고 치료를 해도 차도가 없어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제 증상이 이른바 '새 집 증후군'과 흡사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간단히 말해 새로 지은 집에서 뿜어나오는 독소가 몸을 완전히 망가뜨린 거죠." 만성 두통까지 얻게 된 박 씨는 결국 6개월을 버티지 못하고 부모님 집으로 돌아갔다
병든 집에서 병드는 사람
.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관심이 높아졌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Sick House Syndrome'은 이미 많은 학자와 환경 운동가의 주요 관심사다. 직역하면 '병든 집 증후군'지만 집 안의 독소는 새 집일수록 심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새 집 증후군'으로도 쓰인다.
한강성심병원 산업의학센터 오상용 소장은 "시멘트와 페인트, 벽지, 본드, 가구 마감재, 전자파를 뿜어대는 각종 기기 등 인간의 몸을 공격하는 요소를 집안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며 "이 같은 자재에서 나오는 독소들이 사람의 몸에 나쁜 영향을 끼쳐 알레르기나 만성질환 등을 유발, 몸을 병들게 하는 것이 병든 집 증후군"이라고 말했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섭취하는 전체 물질 중 음식과 음료는 17% 밖에 되지 않고 공기가 83%, 그 중에서도 실내 공기가 57%를 차지한다고 한다. 유기농 채식을 챙겨 먹으며 식생활을 꼼꼼히 챙겨도 독으로 가득한 집에서 산다면 건강관리는 물건너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오 소장은 "새 집에 들어가기 전 입주자가 시공사에 권리를 행사할 줄 알아야 한다"며 "특히 발암 물질이면서 한번 쌓이면 제거하기 힘든 포름알데히드(방부 및 소독 살균용으로 쓰이는 독성이 강한 화합물)는 절대 검출되지 않도록 해달라는 조항을 넣을 것"을 권했다.
환기와 천연 마감재로 독소 줄여야
'병든 집 증후군'을 일으키는 가장 큰 범인은 건축자재와 마감재에서 배출되는 휘발성 유기화합물(VOC). 이는 벤젠, 톨루엔, 아세톤, 포름알데히드 등 상온에서 가스형태로 존재하는 수백 종의 화합물을 일컫는 말로 건물을 지은 후 6개월까지 가장 많이 배출된다. 지난해 6월 서울 60평형대 아파트의 실내공기 성분을 측정한 경원대 건축설비학과 윤동원 교수는 VOC 총량이 1㎗ 에 최고 1.6㎎에 달한다는 검사 결과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한다. 이는 VOC를 규제하는 유럽과 일본의 허용 기준치인 0.4㎎의 네 배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막힌 사무공간에서 오래 근무하는 사무직 종사자에게 나타나던 '병든 건물 증후군'이 이제는 집으로까지 옮겨가 큰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새집으로 옮겼다면 이사 후 6개월까지 하루에 서너 번, 30분 이상 창문을 열어 환기를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리모델링을 하거나 도배를 다시 할 때 값이 조금 비싸더라도 천연소재 마감재를 쓰는 게 바람직합니다."
채 마르지 않은 시멘트와 페인트가 유해 가스를 뿜어대는 새 집이라면 살지 않는 것이 상책이지만 몇 개월 동안 집을 비울 수 있는 여유를 갖기는 쉽지 않다. 윤 교수는 이 때 비상요법으로 쓸 수 있는 것이 '베이크 아웃(bake-out·데워서 없애기)'이라고 덧붙인다. 입주 전 4∼5일 동안 난방을 38∼40?로 올려 놓으면 시멘트와 마감재 등이 마르면서 채 빠져나가지 못한 유해가스가 함께 날아간다. 사이사이 창문을 활짝 열어 증발한 가스를 빼내는 것을 반복한다.
창을 열기 쉽지 않을 경우에는 공기 청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다. 또한 집안에 관엽식물을 많이 두면 공기가 한결 맑아진다. 새집에서 나오는 휘발성 유해가스를 분해하는 아레카 야자, 악취를 줄이는 네프로레피스, 조리할 때 나오는 가스를 없애주는 스파티필럼과 벤자민 고무나무, 음이온을 뿜어 전자파를 막아주는 산세베리아 등 관엽식물은 집안의 공기 뿐 아니라 각종 독소를 줄여주는 일등 공신으로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버릴 것들은 모두 독이다
2년 동안 입지 않은 코트, 5년 이상 처박아둔 대학시절 교재, 1년에 한번 쓸까말까 한 립스틱, 앞으로 1년 이내에 들을 가능성이 없는 CD…. 쓰지 않고 쌓아만 두는 물건은 먼지와 유해가스를 머금고 있는 만성 독소라고 보아도 무방하니 날을 잡아 과감히 정리한다.
입지 않는 옷 중 깨끗한 것은 '아름다운 가게' 같은 재활용 센터에 기부하고 너무 낡았다면 버린다. 서재에 가득한 책이 높은 지적 수준의 척도인 냥 뿌듯해 하기 전에 그것들이 안고 있을 유해 요소들을 떠올려보자. 버리기 아까운 책은 헌 책방에 팔거나 지역 도서관에 기부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몇 년 동안 거들떠보지 않은 음반은 다시 들어볼 필요도 없이 버린다. 1년 이상 열어보지 않은 화장품도 자리만 차지할 뿐 아니라 상했을 가능성이 크므로 과감히 버리자.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 상자 가득 모아둔 화장품 샘플도 마찬가지다. 그 밖에 취미를 잃은 운동장비, 나이에 맞지 않는 장난감, 선물 받았다는 이유로 버리지 못한 채 먼지만 쌓여가는 각종 잡동사니도 정리 대상이다.
주방과 욕실도 유해 요소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이다. 취사 연료가 타면서 나오는 일산화탄소, 이산화질소, 이산화황 등은 자동차 배기가스와 별 다를 바 없다. 주부의 건강을 위한다면 음식 연기가 나지 않을 때도 레인지 후드를 틀어놓아야 한다. 방에 욕실이 딸려 있다면 샤워 후 수돗물에 섞인 살균 소독제가 방에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욕실 문을 닫고 환기 팬을 틀어둔다. 소독제의 영향은 뜨거운 물에서 더 큰 만큼 샤워할 때는 미지근한 물을 쓴다.
새 물건에 대한 집착 버리자
유행이 지났다 싶은 자동차는 가차없이 바꾸고 싫증난다는 이유로 멀쩡한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이들이 흔한 세상이다. 게다가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주민들의 필사적인 노력은 집의 수명을 20년 안팎으로 단축시켰다. 그러나 무엇이든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의 수십 배에 달하는 독을 뿜어내기 마련, 건강한 환경에서 살고 싶다면 새 것에 대한 집착부터 버려야 한다.
참고서나 문제집 등은 새로 사야 하겠지만 한번 읽고 말 소설이라면 도서관에서 빌려 보거나 헌책을 사보는 것이 좋다. 새 인쇄물, 특히 두꺼운 종이에 찍힌 총천연색 동화책이나 잡지를 사서 바로 읽으면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공駙?노출된다. 새 책이라면 바람이 잘 통하는 베란다에 며칠 동안 펼쳐 두었다가 읽는 것이 좋다. 갓 드라이클리닝 해온 옷도 마찬가지로 석유 냄새가 날아갈 때까지 환기가 잘 되는 곳에 걸어두었다 입어야 화학물질이 피부와 호흡기를 상하게 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김신영기자 ddalgi@hk.co.kr
■피부속 독 빼기
피부미인이 되려면 몸속의 독소부터 빼내라구요?
웰빙 트렌드의 최대 수혜자는 단연 뷰티 및 스킨케어 업계다. 몸과 마음의 건강추구라는 웰빙의 본래 뜻을 몸의 호사로 연결시켜 각종 스킨케어 제품을 날개돋친 듯 팔아치우더니 이번엔 웰빙의 한 줄기인 디톡스(detox·해독)를 앞세워 각종 화장품을 쏟아내고 있다. 디톡스 화장품은 공해와 노폐물 등 일상 환경속에 존재하는 각종 독성물질이 피부속에 쌓여있는 한 아무리 값비싼 영양크림도 피부노화 가속을 막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피부속 독소부터 빼고 영양크림을 발라야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 최근 쏟아져나오는 화장품들은 다양한 디톡스 성분을 함유한 것은 물론 제품명 자체에 '디톡스' 단어를 첨가, 소비자들의 구매욕을 부추기고있다.
비쉬에서 내놓은 '퓨르떼 떼르말 디톡시파잉 토너'는 세포호흡활성인자인 유비퀴논이라는 성분이 피부속 독소와 오염물질, 노폐물을 제거한다고 주장한다. 화장품에 쓰인 물은 프랑스 비쉬지방의 미네랄 온천수로 피부 진정작용에도 효과가 있다고.
태평양 라네즈의 '워터플 워시오프팩'은 항균작용을 하는 아이비추출물이 함유돼있는 크림타입의 팩으로 활성산소와 자외선, 공해로 인해 쌓인 피부 스트레스와 독소를 제거하는 기능을 갖췄다. 또 클렌징 제품인 '데일리 클린케어'는 모공속 노폐물을 없애고 유해물질을 정화하는 효과가 있는 티트리(tea tree) 추출물 성분을 함유하고 있다. 티트리 추출물은 호주에서는 대표적인 피부청정 약제로 사용되는 성분이다. 비오템의 '이드라 디톡스 플루이드'도 널리 알려진 제품. 온천수에서 뽑아낸 플랑크톤 추출물인 데톡시라아제, 밀, 옥수수추출 성분을 함유해 독소를 정화하며 보습효과도 탁월하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직장인 백승민씨 체험기
직장여성 백승민(29)씨는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은 무조건 멀리한다. 커피, 탄산음료, 패스트푸드, 담배를 입에 대지 않는 것은 물론 술도 과음하지 않는다. 또 찜질방과 욕조에서 땀빼기를 즐겨 한다. 매일 아침 기초화장을 하기 전엔 정종으로 얼굴을 닦아낸다. 또 하루 한시간 수영을 거르지 않고, 인라인 스케이트도 즐긴다. 전형적인 웰빙족이다.
그는 최근 한 걸음 더 나아가 삶 전체에서 독소를 빼기로 마음먹었다. 일과 결혼에 고민이 깊어질 나이, 마음마저 어지럽게 하는 온갖 잡동사니를 깨끗이 정리하는, 이른바 디톡스 요법을 시도해보자는 것이다. 그의 '디톡스 체험 10일'을 일기 형식으로 엿보았다.
/글 김희원기자 hee@hk.co.kr
사진 손용석기자 stones@hk.co.kr
제1일
새콤한 레몬으로 디톡스를 시작했다. 일어나자마자 뜨거운 물에 레몬을 짜넣은 레몬수를 마셨다. 잠이 한 번에 달아난다.
오늘의 목표는 물 많이 마시기. 물을 하루 2ℓ 정도 마시면 피부와 콩팥의 노폐물 배출을 돕고 대변을 보는 데에도 좋다. 학생 때부터 변비로 고생해 온 나에겐 정말 필요한 건강법이다. 저녁엔 소금을 푼 목욕물에 반신욕을 해 땀을 뺐다. 땀과 함께 노폐물이 빠진다고 하니 기분만으로도 피부가 맑아지는 것 같다. 소금 목욕은 감기기운이 있을 때 특히 좋다.
제2일
디톡스 일정에 첫 위기가 닥쳤다. 친구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는데 술을 입에도 안 대고 있으려니 별별 비난이 다 쏟아졌다. "혼자 잘 먹고 오래 살아라"고 비꼬는 듯한 시선을 과감히 무시하며 끝까지 과일 안주만 집어먹었다. 사회생활하면서 디톡스를 하려면 내가 독해져야 하는 걸까? 하지만 아침은 레몬수와 과일, 점심은 드레싱도 안 넣은 샐러드로 한껏 몸을 푸르게 만들었는데 술로 망가뜨린다면 너무 아깝지….
제4일
가까운 교외의 허브 카페로 드라이브를 갔다. 라벤더 오일을 샀다. 라벤더는 마음을 고요히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잠을 잘 자게 한다는 카모마일도 사고 싶었지만 "처음부터 너무 강한 아로마를 쓰지 말라"는 주인의 권유에 참았다. 로즈마리는 간의 기능을 활성화하고, 페퍼민트는 소화에 좋다고 한다. 코감기에 걸렸을 땐 파인 오일을 뜨거운 물에 떨어뜨려 김을 쐬면 머리와 폐가 맑아진다고 한다.
집으로 돌아와 라벤다 오일을 3∼4방울 떨어뜨려 목욕을 하고 향초도 피웠다. 그래선가? 평소 집에선 손에 붙이고 살던 TV 리모컨을 오랜만에 잊었다. 대신 책을 읽다 잠이 들었다….
제6일
나는 왜 이런 잡동사니와 더불어 살아왔을까? 맘 먹고 사무실 책상을 말끔히 정리했다. 꼭 필요하지 않은 서류뭉치와 메모를 추려내니 한 짐이다. 입사할 때 보고 들춰보지 않은 책이 있어 후배에게 물려주었다. 서랍 속에 꽁꽁 쟁여놓았던 소화제, 변비약 등 약 꾸러미는 약사인 동료에게 맡겨 필요한 사람에게 나눠주라고 했다.
텅 빈 책상을 보니 한편 후련하고 한편으론 불안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마치 내 삶의 일부를 정리한 느낌이다. 대학 졸업 후 직장을 옮겨가며 4∼5년 사회생활을 했지만 아직도 '내 길'에 확신이 없다. 책상을 정리하듯 내 삶도 정리될 수 있을까…?
제7일
내친 김에 연휴 첫날을 방 정리에 투자했다. 장롱 속을 뒤져 입지 않은 옷가지를 꺼냈다. 버리기 아깝다고 처박아 두었던 옷인데 결국 자리만 차지한 채 먼지만 일으키고 있었다. 친구를 불러 모두 주었다.
누가 주면 덥석 받아두었던 화장품들도 유효기간이 한참 넘어 있다. 웬 립스틱은 그렇게 많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찌감치 친구들한테 인심이나 쓸 걸. 쓰레기통으로 직행. 헌데 버리고 나니 새로운 기대가 부푼다. 하, 이제 요것만 쓰면 새 걸 사겠구나. 역시 비워야 채운다니까.
저녁엔 친구와 베지테리언 부페를 찾았다. 베지테리언이라고 풀만 먹는 건 아니다. 콩이나 두부, 버섯 등으로 만든 맛있는 난자완스, 햄버거도 내놓는 식당이다. "배를 곯는다"는 박탈감 없이 건강식을 즐길 수 있어 그만이다. 채식에도 요령이 있다구요!
제9일
절식을 시도했다. 아침은 역시 레몬수와 과일주스, 점심은 사과 2알. 으헉, 오후가 되니 현기증이 인다."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걸까. 다 건강하고 맑게 살자고 하는 일인데…." 회의가 몰려온다. 저녁에 치킨 샐러드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나니 다시 세상이 긍정적으로 보인다.
단식을 하고 물을 많이 마시면 장이 청소되며 쌓인 노폐물이 빠져나간다고 한다. 그러나 역시 전문의의 도움을 얻으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혼자 사는 친구가 떠올라 오랜만에 만났다. 비디오도 빌려보고 수다도 떨었다. 그래, 꼭 뭔가 해야만 디톡스냐. 정신건강에 좋은 것이 곧 독소를 빼는 것이라고 한다. 외로움 타는 친구와 감정을 나누는 것도 결국 디톡스가 아닐까.
저녁엔 사과식초 목욕을 시도했다. 사과식초는 몸 깊숙이 있는 독소를 빼내며 가려움에도 좋다고 한다. 시큼한 냄새에 거부감이 들었지만 정신은 좀 맑아진 듯했다. 정종 목욕도 가끔 하는데 피부의 각질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마지막 날
열흘 디톡스 프로그램에 화룡점정! 명상 체험에 나섰다. 시내 한복판에 자리잡은 명상원을 찾아 탁기(濁氣)를 빼는 동맥명상법, 마음을 여는 건곤일척 수련법, 틱낫한 스님이 한다는 걷기 명상 등을 했다. 두 발을 굳건히 땅에 붙이고 몸을 앞으로 기울이는 것(동맥명상)만으로도 모든 나쁜 기운을 뺄 수 있다니!
"명상의 핵심은 호흡입니다. 호흡이 고요히 가라앉으면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고, 그러면 자신의 행동과 생각이 뚜렷이 보입니다. 나를 둘러싼 주위 사람들의 행동과 생각도 명석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뭘 해야 할지, 내 몸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돈을 어떻게 잘 정당하게 벌 수 있을지 한눈에 보이게 됩니다." 사범님의 설명이다.
회사 다니면서 '나만 일하는 게 아닐까, 내 갈 길이 따로 있는 게 아닐까, 왜 나를 인정해 주지 않을까'하는 괴로움에 시달리지 않는 사람이 있으랴. 하루 5∼10분의 명상으로 내 삶이 투명하게 들여다 보인다면 꽤 괜찮은 투자가 아닌가.
■독 없이 살아가는 법
영국 저널리스트이자 '자연 건강학'의 이름난 저자인 제인 알렉산더는 저서 '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에서 현대인이 일상생활을 유지하면서 할 수 있는 다양한 디톡스 프로그램을 소개했다. 단 만성적인 질병이 있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임신부인 경우 병과 아이를 돌보는 일이 디톡스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독소 음식 끊기 카페인, 술, 단 것, 밀가루 음식, 인스턴트 음식을 끊는다. 식사는 양껏 하되 튀기거나 기름진 음식을 피한다.
신선 음식과 충분한 물 섭취 곡식, 채소, 과일을 중심으로 가능한 한 생 것을 먹는다. 하루 2㏄정도의 물을 마신다.
해독 음식 먹기 갓 짜낸 채소·과일 주스, 된장 청국장 등 발효음식, 마늘 연근 미나리를 많이 먹는다.
디톡스 운동 요가 태극권 필라테스(스트레칭과 요가를 합친 운동법) 같은 정적인 운동을 주4회 이상 한다.
피부 브러싱 세수나 샤워 전 마른 솔로 5분간 발가락부터 다리 위로(앞뒤 모두), 손끝에서 팔 위로, 어깨에서 심장으로, 목 뒤는 아래로, 복부는 시계방향으로 둥글게 쓸어내린다.
독을 빼는 목욕 소금, 사과식초, 또는 아로마 오일을 목욕물에 넣고 반신욕을 하거나 스팀을 쐰다.
생활의 독 빼기 집안과 사무실에서 쓰지 않고 먼지만 내는 물건들을 정리한다. 필요한 사람에게 주거나 기부하거나 버린다.
정보의 독 빼기 TV는 꼭 필요한 프로그램만 본다. 메일은 그때 그때 삭제하거나 저장하고 스팸 메일은 리스트 삭제를 요청한다. 인터넷 서핑도 시간을 제한한다.
명상 하루 몇 분이라도 호흡에 집중하며 자신에게 몰입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내가 진정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질문을 던지며 묵상한다. 자신을 친절하게 대하고, 축복하는 마음을 초대하라.
세상에서 멀어지기 휴식을 위한 주말을 만들자. 외부 연락을 끊고 운전도 하지 않으며 산책, 스트레칭, 영감을 주는 책 읽기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위의 모든 생활지침을 지키고 일찍 잠자리에 든다.
■마음의 독 빼기
몸 속이나 주변 환경의 독만이 문제일까? 아니다. 오히려 우리를 더욱 지치게 하고, 삶을 갉아먹는 것은 마음 속의 '독'이다. 화, 분노, 스트레스, 짜증…. 단순히 은유의 차원이 아니다. 최근의 정신과학은 괴로운 감정과 생각들이 식품의 독이나 공해 이상으로 인체 건강에 해롭다고 경고한다.
때문에 디톡스의 마침표는 우리 마음 속의 독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그렇다고 마음의 디톡스 프로그램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최근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명상' 바람은 곧 마음의 '탁기(濁氣)'를 씻어내는 디톡스의 한 유형이다. 도심 속 명상 수련원인 수선재의 박중양 팀장은 "명상은 바로 마음 속의 찌꺼기를 씻어내고 맑고 평안한 마음을 되찾는 것으로 디톡스와 상통한다"며 "맑고 건강한 마음과 생각이 곧 몸의 건강과 직결된다"고 말했다.
명상 수련법은 수십가지이지만 대개는 호흡을 깊고 천천히 하면서 근육을 풀어헤친 뒤 마음을 가라앉히는 식이다. 몸과 마음의 고요 속에서 생각은 호흡에 집중할 수도 있고, '나는 평화롭다' 같은 의미있는 문장을 되뇌어 보거나 아니면 눈을 감고 숲 속을 떠올리는 등의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
명상의 디톡스 효과에 대한 과학적 관심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명상의 과학'이란 주제로 명상의 의학적 효과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 60년대부터 시작된 연구에서 명상이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만족감을 증가시킨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졌다. 동양의 전통적 정신 수행법이었던 명상이 서양의 과학적 관심 속에서 재발견되며 부흥하고 있다는 것이다. 타임은 미국에서만 명상 인구가 엘 고어 전 부통령을 비롯해 1,0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전세계적인 명상 바람은 최근의 정보화 사회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 삶의 피로를 가중시키는 정보의 홍수, 복잡한 사회구조 등 현기증 나는 복잡계의 회로에서 탈출하고 싶은 욕망이 명상과 맞아떨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유럽에서 유행하고 있는 다운시프트족도 같은 맥락이다. '저속 기어로 전환하다(downshift)'는 말에서 따온 이 조어는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듯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보다 단순하고, 여유로운 생활을 지향한다.
명상의 디톡스 효과도 따지고 보면, 인간의 신경계를 자극해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는 정보를 차단하는 데 있는 셈. 불필요한 정보를 제거해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고 여유를 찾는 것이다.
이런 마음의 디톡스 프로그램의 원형은 역시나 종교다. 나쁜 마음을 품지 말라는 종교적 가르침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불교의 선 수행이나 우리나라 민족종교의 단전 호흡처럼 애초 명상이란 것도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다. 모든 사념을 제거한 상태에서 우주와 자아의 본질을 깨닫기 위했던 것.
하지만 종교의 영역이 점차 생활 윤리학으로 변모해가듯이 명상도 거창한 종교적 깨달음의 차원이라기 보다 스트레스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다스리는 정신 건강 요법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실제로 각종 명상 수련원들이 예전의 종교적 색채를 벗겨내고 '웰빙'의 이름 아래 명상카페, 명상편의점 등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대중 곁으로 다가왔다.
종교의 이름이든, 명상의 이름이든, 디톡스의 이름이든 결국 밑에 깔린 것은 같은 이치다. '맑고 평안한 마음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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