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법제도 선진화방안(노사관계 로드맵), 그리고 올들어 정부가 역량을 집중시키고 있는 일자리창출대책 등 노동정책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실효성을 고려하지 않고 밀어붙이다시피 하는 정부의 추진 방식에 대해 비판이 집중되고 있는 것. 사회적 여론 수렴 등 충분한 검토 없이 성급하게 추진하다 보니 노·사간 대립을 조장한다는 지적까지 나온다.정부, 성과주의에 집착
지난달 노·사·정 대표가 체결한 손배·가압류 관련 사회적 협약은 1,300억원에 달하는 일선 사업장의 손배·가압류를 실질적으로 해결할 만한 강제성을 띠지 못한 선언적 합의에 그쳤다. 이 때문에 협약이 '속 빈 강정'에 비유되자 노동부 관계자는 "속 빈 강정도 계속 먹으면 배부르다"며 동반자적 노사관계 개선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사는 물론이고 학계에서도 '성과내기'에 급급한 정부의 성급한 태도가 계속 비판의 도마에 오른다. 민주노총 4기 위원장으로 선출된 이수호 당선자는 "정부가 관련 당사자와 충분한 사전 조율 없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 노사 어느 쪽에도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무슨 정치적 효과를 노리는 것은 아닌가"라고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출범 후 노사관계 개선에 강력한 의지를 보여온 정부가 갑자기 노사관계 로드맵 논의를 일자리 창출의 후순위로 밀어 버린 것도 비판을 받고 있다. 노동계와 재계의 거센 반발로 노사정위원회에서의 논의가 지체된 노사관계 로드맵이 일자리만들기 의제에 밀려나면서 김영삼 대통령 정부 때부터 되풀이되온 노사관계법제도 개선 논의의 완결이 언제 가능할지 미지수가 돼버렸다. 때문에 손배·가압류 등 노사관계를 악화시켜온 이슈들은 언제라도 재연될 수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정부가 내놓는 일자리만들기 대책도 노사 신뢰 회복보다는 선심성 정책에 치우쳐 혼란을 부채질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일자리 만들기를 강조하면서 정부 부처마다 경쟁적으로 일자리대책을 내놓고 있는 것. 노동부 관계자는 "각 부처마다 내놓는 일자리 대책은 서로 중복된 내용도 상당수"라고 지적했다.
정부도 사용자
정부는 노사간 힘의 균형을 공평하게 조율하고 있는 것일까. 노동계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 근거로 드는 대표적인 지표가 노동자와 사용자의 구속자수 격차. 노동계는 "정부의 법 집행이 노동자에게는 쇠몽둥이, 사용자에게는 솜방망이"라고 비판한다. 민주노총에 따르면 지난해 구속노동자수는 도심집회에 화염병이 등장한 11월 전국노동자대회 48명, 2차례에 걸친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40명, 철도파업 16명 등 204명에 달한다. 반면 구속된 사용자는 10명에 불과하다. 대부분 그 사유도 임금체불 때문으로 부당노동행위로 인해 구속된 사용자는 노조간부를 매수한 택시업체 사장 1명 뿐이다.
직업상담원노조 파업처럼 정부가 사용자의 입장이 되면 그 성향은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문제가 되는 것은 민간사업장에 비해 파업의 타격이 크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공기업의 경우 예산을 이유로 임금 협상 등에서 사용자가 소극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비정규직노조가 41일간 파업을 벌였던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아직도 파업 당시의 합의 내용은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단계적으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으나 예산, 인력 운용에 있어서 공공부문은 경직돼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앞으로 공공부문에서 이슈로 떠오를 것은 비정규직 문제. 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 산업인력공단, 산업안전공단, 장애인고용촉진공단, 산재의료원, 노동교육원 등 6개 기관을 대상으로 지난해 조사한 결과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율이 19.3%로 조사되는 등 정부 및 공공부문 내의 비정규직 문제가 심각해 정부가 조속히 해결하지 않으면 갈등은 계속 커져 갈 전망이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공무원노조 인정 직권중재 개선을" ILO 매년 권고
국제노동기구(ILO)는 해마다 한국의 노동관계법 및 노동관행상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수정을 권고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제시하고 있는 노사관계 개선방향의 주요 기준 중 하나인 '글로벌스탠더드'는 이처럼 연례행사로 되풀이되는 ILO의 권고를 토대로 한다.
우리 노동관련 법제 가운데 ILO의 '결사의 자유 원칙' 기준에 미치지 못해 지적되는 것들은 공무원 노조 인정과 직권중재를 통한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권 제한, 복수노조 금지, 노조 전임자 임금지원 금지, 제3자의 단체교섭이나 쟁의행위 지원 처벌, 실업자 노조 불허 등이다.
특히 노동계가 최근 쟁점으로 부각시킨 것은 공무원노조 합법화와 직권중재 문제이다. ILO는 공무원들도 '결사의 자유 원칙'에 따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노조를 설립하고 가입할 권리를 보장 받아야 한다는 입장. 이와 관련, 노동부는 지난해 공무원에게 예산 및 법률적 부분을 제외한 사안에 대해 단결권, 단체협상권, 단체협약체결권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 공무원노조법안을 입법예고한 상태다.
또한 직권중재로 필수공익사업장의 파업권을 제한하도록 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의 개정도 주요 권고 사항. ILO는 철도 및 지하철, 석유 분야는 업무 중단시 국민의 생명, 안전, 건강을 위협하는 필수공익사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고, 필수공익사업 범위의 조정도 제안했다. 국제자유노조연맹(ICFTU)도 2002년 직권중재제도와 관련, 한국 정부를 ILO에 정식 제소했다.
복수노조, 전임자 임금 지원, 실업자노조 등의 쟁점은 노·사·정 합의에도 불구하고 시행 또는 입법을 연기하는 바람에 번번이 ILO로부터 지적당하는 사안들이다. 사업장에 노조가 결성돼있는 경우 조직대상을 같이하는 노조의 설립을 금지하는 조항은 2001년 개정됐어야 하지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맞물려 5년간 유예됐다. 더욱이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는 법적으로 개입할 사항이 아니라는 ILO의 권고가 있었으나 노사정위원회에서 법으로 임금지급을 금지토록 합의했다.
실업자의 노조 가입 허용 문제 역시 1998년 노사정위가 초기업단위 노조의 경우 해고자도 가입시키기로 합의했으나, 법적 근로자 개념과 상치되는 등의 문제로 인해 입법이 보류돼있다.
/문향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