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인류의 새로운 에너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국제열핵융합실험로(ITER) 건설계획이 착착 진행되고 있다.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러시아 중국 한국 등이 참가하는 거대 프로젝트는 이미 참가국간 비용분담 합의가 끝났으며 실험로 유치를 놓고 일본과 프랑스가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땅 위의 태양
열핵융합로는 1억도를 넘는 고온 상태에서 중수소(重水素)와 3중수소를 충돌시켜 태양과 같은 핵융합을 일으킨 뒤 이 때 발생하는 방대한 에너지를 빼내는 개념이다.
중수소와 3중수소의 혼합연료 1g으로 원유 8톤 분의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거의 무한정의 에너지원이어서 '땅 위의 태양'이란 별명을 갖고 있다.
1985년 미소 정상회담에서 핵의 국제적 평화이용을 위해 제창됐으나 미국이 빌 클린턴 정권 때인 1999년 비용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탈퇴해 지지부진하다가 '에너지 정권'으로 불리는 조지 W 부시 정권이 2003년 1월 복귀를 결정해 속도가 붙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말 발표한 '과학시설 20년 계획'에서도 ITER을 1순위에 올렸다.
국제우주정거장 건설 계획에 버금가는 대역사로 실험로 건설에 10년, 실험운전에 20년이 걸려 금세기 후반 실용화가 목표다.
2001년 미국 일본 러시아 EU가 공동 공학 설계를 완료했고 2003년 중국과 한국이 추가로 참가했다.
실험로 유치국이 건설비의 48%와 운전비의 42%를 부담하고 나머지 참가국이 모자라는 비용을 각각 10%씩 분담하게 된다.
건설비가 50억 달러, 운전비가 60억 달러 가량 소요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핵융합 반응 때 나오는 중성자를 견뎌낼 실험로의 재질 개발, 방사능 피폭 방지 대책, 방사성 폐기물 처리방법 등 기술적 난제가 아직 많지만 참가국이 각자의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해결해 나갈 예정이다.
일본과 프랑스의 유치경쟁
실험로 건설지를 놓고는 일본과 프랑스 두 원전대국의 치열한 막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두 나라 모두 석유 등 천연자원이 없어 원전을 기간 전력으로 하고 있고 핵융합을 지금의 원전을 대체할 미래 기간 에너지원으로 보고 있다.
막대한 비용부담과 실험 실패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실험로 입지국이 되면 연구·개발 성과의 각종 상업적 이용에서 주도권을 갖게 된다.
일본은 아오모리(靑森)현 록카쇼무라, 프랑스는 남동부 카다랴슈를 건설지로 내세우고 있다.
일본은 이미 1985년부터 ITER과 같은 원리의 실험장치 'JT60'으로 실험을 계속해 1996년 세계 최고인 5.2억도의 고온을 내는 데 성공하는 등 축적된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유럽 단일 후보인 프랑스는 유럽 각국의 자금·기술 동원과 분담에 의한 종합 능력이 강점이다.
지난해 12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렸던 참가국 각료회의에서 건설지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2월로 연기됐다.
미국은 공개적으로 일본을 지지한 지 오래고 러시아와 중국은 프랑스를 선호하고 있다.
베이징(北京)-상하이(上海)간 고속철도 수주전에서도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프랑스는 26∼28일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과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도 고속철도와 ITER에서 모두 프랑스 손을 들어줄 것을 다시 한번 요청했다.
한국은 일본 지지로 알려지고 있지만 아직 공식 입장은 밝히지 않아 캐스팅 보트를 잡았다는 분석이 많다.
이로 인해 가와무라 다케오(河村建夫) 일본 문부과학성 장관이 지난 14일, 클로디 에뉴레 프랑스 연구기술부 장관이 19일 잇달아 한국을 방문해 지지를 호소했다.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28일 도쿄(東京) 포린프레스센터에서 열렸던 설명회장에서 "21세기의 대표적 국제협력 사업을 한·중·일이 협력해 아시아 주도로 끌고 나가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하기도 했다.
일본과 프랑스의 유치경쟁이 과열돼 비방전 조짐까지 생기면서 실험로 본체는 일본에 건설하고 데이터 분석·원격조작 센터는 프랑스에 건설하자는 중재안도 거론되고 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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