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뉴햄프셔에서 치러진 민주당 예비선거는 존 케리(매사추세츠) 상원의원을 확실한 선두주자의 대열에 올려놓았다. 아이오와주 코커스(당원대회)에 이어 두 번째 승리를 한 케리 의원은 '거실'에서 '전국 무대'로 확대되는 향후 경선전에서 최종 티켓을 따낼 수 있는 고지를 선점했다. 예비선거 제도가 대폭 개선된 1972년 이래 초반 두 주에서 모두 승리한 후보도 드물지만 그런 후보가 본선 진출에 실패한 전례는 없다.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는 두 번째로 분루를 삼켜야 했다. 뉴햄프셔주는 한때 그가 2위와의 격차를 30% 포인트 이상 벌렸던 곳이다. 압도적인 시간과 엄청난 비용을 투입하고도 케리 의원에게 두 자리수 차로 밀린 초라한 성적표는 경선 전 가파르게 이어오던 인기 모멘텀을 급속히 꺾어버렸다.
두 곳의 승리를 발판으로 초반 대세를 장악하려던 계획은 이제 '생존 전략'으로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그는 2월3일 7개 주에서 치러질 '미니 슈퍼 화요일' 결전에서 한 곳에서라도 승리를 따내지 않으면 안될 벼랑 끝에 몰렸다. 그나마 아이오와 코커스 3위 성적을 한 단계 끌어올려 향후 재기의 발판을 다질 수 있게 된 것이 이번 선거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아이오와 경선을 포기한 채 뉴햄프셔에 매달렸던 웨슬리 클라크 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군 사령관도 딘 후보를 따라잡지 못하고, 4위 존 에드워즈(노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에게 바짝 추격을 허락함으로써 '평범한' 후보로 전락했다.
그러나 아직 대세를 점치기에는 이르다. 무엇보다 케리 후보가 향후 경선이 전개될 남부와 남서부 지역에서 경쟁력이 없는 북동부 출신 진보주의자라는 약점을 버텨낼 수 있을지가 향후 판도의 관건이다. 뉴욕 타임스는 "이제 그가 전국적 무대에서 본격적으로 검증 받을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케리 후보는 두 번의 승리 이후 탄력이 붙고 있는 자금력과 조직력을 7개 주에 고르게 분산, 초반 압승 분위기를 이어간다는 전략이다.
딘 후보측도 이번 선거 결과를 '탄탄한 2등'이라고 부르며 장기전을 대비하고 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아이오와에서 3위를 한 뒤 뉴햄프셔에서 2위로 올라서 남부에서 대세의 반전을 꾀했듯이 얼마든지 역전이 가능하다는 게 딘 후보측의 생각이다. 무엇보다 딘 후보측은 다른 후보에 비해 월등한 자금력이 향후 TV 광고전 중심으로 전개될 전국단위 선거에서 유리한 강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딘 후보측의 선거참모는 "이번 선거는 7주(州) 싸움이 아니라 7주(週) 싸움"이라고 말해 3월2일 슈퍼 화요일 결전 때까지 케리 후보와의 양강 구도를 이어간다는 계획임을 시사했다. 미국의 언론들은 대의원 선출 규모가 최대이지만 리처드 게파트 전 하원의원의 경선 포기로 무주공산이 된 미주리 주가 이들의 최대 격전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뉴햄프셔 주 선거에서 3위와 4위 다툼을 치열하게 벌인 클라크 전 사령관과 에드워즈 의원 등 남부 출신 후보들도 자신의 앞마당 격인 남부에서 반전의 계기를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할 계획이다. 아이오와주 코커스 2위에 이어 뉴햄프셔주에서도 선전한 에드워즈 후보가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승리한 뒤 젊은 바람을 이어갈 수 있을지도 향후 선거 관전의 포인트다.
/맨체스터(뉴햄프셔주)=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 케리는 누구인가
존 케리(60) 상원의원은 큰 키와 마른 체격으로 다소 유약해보이는 외모이지만 베트남전에서 훈장을 여러 개 받은 참전 군인 출신이다.
전역 후 '반전 베트남 참전용사회'의 대변인을 맡아 1971년 의회 청문회에서 베트남전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후 지방 검사로 재임하다 82년 매사추세츠 부지사를 거쳐 84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에 당선된 뒤 내리 4선을 했다.
명문 예일대를 나온 케리 의원은 외가가 출판 재벌 포브스 가문이고, 식품 재벌 미망인과 재혼한 탓에 '돈 걱정 없는 정치인'으로 불린다.
유세장에 재혼한 부인 소생의 자녀와 친자식을 함께 데리고 다니며 화목한 가정임을 과시하기도 한다. 올 초 전립선암 수술을 받았으나 곧 회복해 선거운동에 복귀했다.
케리 의원의 정책 노선은 외교적으로서는 국제사회와 협력을 중시하는 국제주의, 경제적으로는 서민을 위하는 전형적인 민주당 자유주의 성향이다.
그는 현 정부의 강경한 대북 정책을 비판하고 집권할 경우 북한과 양자 협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을 강력한 우방으로 대우하고 사우디 아라비아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지원하지 말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는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무력 사용을 승인하는 의회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는 등 지지 쪽에 기울었다가 이후 강력한 반대로 돌아섰다.
지난해에는 부시 대통령이 요구한 870억 달러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재건 비용에 대해 재정 적자가 국민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반대했고, 조속한 이라크 주권 이양을 강조하고 있다. 이라크전에 대한 입장 변화로 인해 민주당 경선 운동 초기에는 수세에 몰리기도 했다.
케리 의원은 또 세금 감면 같은 부시 행정부의 경제정책을 부자들만을 위한 것으로 비난하고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둬 사상 최대인 재정 적자를 4년 안에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기업 정책에 있어서는 정부가 비리 기업과 계약을 맺지 못하게 하고 기업의 해외계좌 보유를 금지시켜 조세 피난처를 이용한 탈세를 뿌리뽑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딘 "새 전기 마련했다"
"뉴햄프셔주 주민들이 우리 진영에 전기를 마련해줬으며 나는 이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우리는 확고한 2위에 올라섰다. 우리는 앞으로 열흘간 12개 주에서 빡빡하게 짜여진 선거운동 계획을 가지고 있는 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다. 우리는 꼭 이번 경선에서 승리할 것이다."
클라크 "계속 진군"
"결의에 찬 군인이 나라를 위해 싸울 때 성취할 수 있는 것을 과소평가 해서는 안 된다. 불과 4개월 전만해도 우리는 경선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가진 것이라곤 희망과 더 나은 미국을 위한 비전뿐이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올바른 주인에게 돌려줄 때까지 계속 진군할 것이다."
에드워즈 "지지 상승"
"열흘 전만 해도 뉴햄프셔주 내 나에 대한 지지율은 클라크에 20포인트나 뒤졌다. 하지만 이번 결과는 나에 대한 지지율이 올라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이 힘을 바탕으로 다음 주 열리는 예비선거와 코커스를 향해 갈 것이다."
/김이경기자 moonligh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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