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70) 시인은 "경기 안성의 집에서 서울로 나오는 길에 최고의 사치를 누린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또 전철로 갈아타고 오면서 그는 창 밖의 풍경에,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에 황홀해 한다고 했다. '만인보(萬人普)'(창비 발행)는 그가 그렇게 보아온 사람들의 얘기를 '시로 쓴 인물 사전'이다.고은 시인이 연작시집 '만인보' 16∼20권을 냈다. 1997년 13∼15권이 나온 뒤 7년 만이다. 전권에서 70년대의 인간 군상을 다뤘던 그는, 새롭게 쓴 시 719편에서 전쟁이라는 역사의 폭력에 짓밟힌 50년대의 얼굴을 하나하나 찾아냈다.
"한국전쟁은 농경사회의 전통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살아온 고향에서 몸을 옮겨야 했다. 곳곳을 떠돌아다니는 이주의 삶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가 보기에 전쟁은 '삶과 맞닥뜨린 죽음'을, '실존과 폐허와 이데올로기의 습래(襲來·쳐들어옴)'를, '인간의 비인간화'를 몰고 온 비극이었다. 번화한 오늘의 명동 골목은 50년대에는 억새 사이로 벽돌 조각이 굴러다니는 폐허였다. 그는 그 벌판에서 술을 마시고 시를 노래하는 것으로 젊은 날을 보냈다. 폐허는 그의 시의 본적지였으며, 우리 역사가 새로운 연대기를 만들어낸 터이기도 했다. '이렇게 살아 있다/ 이렇게 자라나고 있다/ 그 포성 속에서/ 그 폭격/ 그 굶주린 후방에서/ 이렇게 어여쁘게 자라났다'('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이승만과 김일성, 이상룡 조소앙 김달삼 등 좌우익 정치·혁명가와 오영수 임화 이쾌대 최승희 등 예술가의 얼굴이 그려졌다. 그는 이들의 이름을 시로 새김으로써 고통스러운 역사를 되짚는다. 그러나 '만인보'의 각별한 의미는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서 역사의 맨얼굴을 찾아낸다는 데 있다. 피난 행렬 속에서 정신이상이 돼버린 만수 할머니, 피난생활 중 함께 자취하다가 양말 한 켤레 때문에 헤어진 계일지와 오병탁, 병든 마누라를 버려두고 혼자 피난간 공대순 영감의 사연은 전쟁의 잔인한 상처의 기록이기도 하다.
고씨는 1986년 '만인보' 첫 권을 냈다. 이번에 출간한 다섯 권에 실린 시는 2003년 여름 두 달 만에 쓰여졌다. 올 가을 21∼25권, 내년 초 26∼30권을 내는 것으로 여정을 마칠 참이다. 80년 내란음모 등의 죄명으로 수감됐을 때 구상한 연작시 3부 중 '백두산'에 이어 2부를 매듭짓게 된다. 그는 불교와 유교, 노장철학과 샤머니즘을 아우르는 사상을 집대성한 연작시를 3부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시)들이 서로 세상에 내보내달라고 조른다. 다른 데로 가라고 해도 안 떠난다." 놀랍도록 왕성한 시력(詩力)이다. 시 낭송회와 문학 강연을 위해 31일 미국으로 떠나는 그는 "내 그림자가 많이 지쳤을 게다. 나를 따라다니느라고"라면서 웃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고뇌없는 성형詩·자기도취詩 판쳐"
고은 시인이 '만인보' 16권 앞머리 '시인의 말'에서 최근 한국시단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해 관심을 모은다. 그는 '누구나 시인노릇에 나서는 작태'와 '시의 제한없는 성황'을 전제하면서 "많은 시의 숙달된 화법은 거의 고뇌없는 성형수술의 미모를 따르고 있다"고 밝혔다.
또 "시를 사소설 및 신변잡기 또는 개인 일지의 수단으로 삼고 있다"면서 "여전히 닫힌 진영주의나 황당무계한 초월주의에 의한 도(道)의 수작들이 자아내는 무뇌의 수작은 한국시의 리얼리티에 요구되는 광의의 시적 대상들을 가로막는다"고 비판했다. 시에서 현실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 고은 시인은 인터뷰에서 "요즘 시인들이 '나'만을 앞세울 뿐, 사물과 타자를 품으려는 의지가 적은 듯 싶다. 시인들의 가슴이 넉넉하게 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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