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사극의 야외 촬영 현장. 중전과 대비가 계단을 걸어 내려오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배우들이 계속 대사를 틀려 똑같은 장면을 벌써 10여 차례 찍고 있다.처음 한두번은 웃음으로 넘어갔지만 NG가 10번을 넘어서자 슬슬 제작진도 지치기 시작했다. 참다못해 PD가 촬영을 중단시켰다. "이대로는 안되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난 PD는 급기야 대본을 펴들고 NG를 되풀이한 배우들의 대사를 볼펜으로 죽죽 그어 버렸다. 아예 NG를 낼 원인을 없애버린 것이다.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NG의 대부분은 대사에서 발생한다. 배우들이 대사를 잘못 외우거나 호흡이 안맞을 때 흔히 NG가 일어난다. 한 번 일어나는 NG는 희한하게도 되풀이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배우들은 대본을 다시 들춰보고 대사를 외워 정신차리고 연기하는 방법 말고는 해결책이 없다. 그러나 여러 차례 되풀이되면 PD가 나서서 정리를 해줘야 한다. 사람마다 개성이 다르듯 PD들도 NG 해결법이 제각각이다.
신인 탤런트들이 가장 무서워 하는 이는 장용우 PD.
배우들이 자꾸 대사를 틀려 NG가 날 경우 그의 해결법은 간단하다. "대사 빼." 아예 대사를 없애버리는 것. 그래서 한 번이라도 얼굴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는 신인 탤런트들에게 그는 가장 무서운 존재였다.
그보다 한 술 더뜬 PD는 A씨. 시청률 50% 이상을 기록했던 미니시리즈를 연출한 A씨의 '남부순환도로 사건'은 유명하다. 성격이 급하기로 소문난 A씨는 배우들이 NG를 내면 불 같이 화를 낸다. 남부순환도로에서 야외 촬영을 하던 그는 신인 배우가 지각을 한데 이어 계속 NG를 내자 화를 이기지 못해 그 배우의 차에 돌을 집어던졌다. 차 앞유리창이 박살났고 그날 촬영은 그것으로 종결됐다.
'한뼘 드라마'를 연출하는 황인뢰 PD는 정반대의 NG 해결법을 갖고 있다. 그는 배우들이 NG를 내면 옆으로 다가가 귓속말하듯 소곤소곤 이야기한다. 배우들이 무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다. 배우들은 PD가 오히려 이렇게 조용히 얘기하면 소리치는 것보다 더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의 연출 현장은 늘 조용하다. 스태프에게 지시하는 것도 마치 야구경기장에서 감독과 선수가 사인을 주고 받는 것처럼 간단한 손짓으로 대신한다.
이처럼 NG 해결에도 감독의 연출 스타일이 배어 있다. 모두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고민과 노력의 산물인 만큼 좋고 나쁘고를 따지기 전에 '열정'으로 이해해야 할 부분이다.
/최연진 기자 wolfpack@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