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지난해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의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한 뒤 지안시박물관을 새 단장해 고구려가 중국사라고 선전하는 사실상의 홍보 공간으로 꾸민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올해 6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이 박물관에 각국의 역사문화 탐방객이 몰려들 경우 중국 의도대로 자연스럽게 고구려가 중국사로 세계에 알려질 것이 우려된다.조법종 우석대 교수는 28일 중국 당국이 지안 일대에서 지난해 대거 발굴한 새 고구려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박물관을 고치면서 고구려사가 중국사라고 선전하는 설명판을 전시실 곳곳에 새로 붙였다고 밝혔다.
조 교수에 따르면 지안시박물관은 지난해 10월 건물 안팎과 주변 조경을 완전히 새롭게 꾸며 개장하면서 2개의 전시실 출입구쪽 벽 4곳에 고구려가 중국에 예속된 지방정권이라는 것을 집중 부각한 설명판을 새로 설치했다. 박물관 안 오른편에 자리잡은 A전시실 입구에 붙은 설명판에는 '고구려 멸망 뒤 유민 대부분이 중국으로 귀속됐다'고 주장하며 당나라 역사서인 당회요(唐會要) 구당서(舊唐書) 등의 기록을 근거로 제시했다. 그 맞은편에는 고구려가 역대 중국 정권에 조공한 기록과 당시 중국이 고구려에 내린 책봉호 등을 연도와 함께 나열했다.
왼편에 마련된 B전시실 역시 입구 바로 안쪽에 고구려와 중원 역대 왕조의 연대 대조표를 담은 설명판과 중국과 고구려의 역사적인 관계를 설명하는 패널이 각각 걸려있다. 설명판에는 특히 '고구려가 건국할 때부터 한사군인 현도군의 속현이었고 두 차례 천도 이후에도 계속 낙랑군의 영역 안에 있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박물관 입구 정면에 자리한 광개토대왕비 탁본 옆에도 '고구려는 중국 동북의 소수민족이 세운 정권이며, 중국 지방정권의 하나'라는 설명이 중국어와 영어로 나란히 붙어 있다. 조 교수는 "새로 단장하기 전에는 고구려 역대 왕을 상상해서 그린 그림이 줄줄이 붙어 있는 정도가 고작이었다"며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지안의 유물 발굴과 고구려사 왜곡작업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 박물관이야말로 '동북공정'의 논리에 따라 왜곡한 역사를 일반에 적극 홍보하는 핵심적인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한국고대사학회는 30일 오후 2시부터 서울 대우재단빌딩에서 여는 '중국의 고구려 유적 정비 현황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대응 방안' 토론회에서 이 같은 사실과 함께 최근 중국의 고구려 유적 발굴성과를 소개할 예정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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