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통상부가 건국이래 최대의 수난을 겪고 있다. 한국 최고 엘리트 집단으로 정평이 나있던 외교부가 부패, 무능, 무사안일, 기강해이의 복마전으로 격하되고 있다. 거기에 외교노선을 문제 삼아 장관이 경질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외교관은 나라의 얼굴이자 국익수호의 첨병이다. 기강이 해이하고 무사안일을 일삼는 외교관으로는 나라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국민 모두가 신뢰할 수 있는 외교관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외교부를 비판하고 폄하만 해서는 안될 일이다. 외교 관리들의 기를 살려주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사실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 동안 외교부의 인프라는 국력 신장에 역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한 예로 한국의 수교국은 1991년 153개국에서 2003년 184개국으로 증가한 반면, 재외 공관 수는 144개에서 129개로 감소됐다. 1997년 1,315명이었던 직원 수도 2003년에는 1,260명으로 오히려 줄어들었다. 98년 통상교섭 기능을 통합시킨 것까지 감안하면, 그 감축 폭은 훨씬 크다 하겠다.
과거 남북 외교경합이란 명분 하에 재외 공관이 과다 확장되었고 그에 따른 폐단 역시 적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볼 때, 한국 외교 인프라는 문제시 된다. 인구 500만의 덴마크는 127개 재외 공관에 1,676명의 외교관이 포진하고 있다. 세계화의 가장 성공적 국가로 알려진 네덜란드의 경우, 인구는 우리의 3분의 1밖에 안되지만 재외 공관 수 145개에 외교관 수는 3,051명에 이른다.
물론 외교관의 수가 많다고 외교를 잘하는 것은 아니다. 외교관의 국가의식, 신념, 자질, 전문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에 걸맞은 동시에, 증폭되고 있는 다자, 양자간 외교 현안들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외교 인프라의 확충이 시급하다 하겠다.
이와 더불어 변화하는 외교 환경에 부합하는 신축적 제도 운용이 요청된다. 일부 주한 외교사절들은 외교부를 북핵협상부, 한미동맹부, 또는 4강외교부라고 비꼬는 경향이 있다. 외교부 고위층이 이들 현안에 전적으로 매달려 있으니까 기타 외교 사안에는 신경을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익은 주변 4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차관, 차관보 수를 늘려서라도 의전이나 다변외교에 차질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외교부 직제를 국제수요에 따라 탄력 있게 운용해야지 국내 부서에 맞추어 획일화해서는 안될 것이다.
조직과 인력운용의 융통성 역시 절실하다. 아세안+3,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군축, 인권, 마약, 환경 등 우리의 국익과 직결되는 외교 사안들을 인력부족 때문에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그래서는 국익 확보는 고사하고 국제적 위신도 세우기 어렵다. 대기명령을 받고 기다리는 노련한 대사들을 조직정원(T/O)에 구애 받지 않고 이 분야에 활용할 수 있도록 운용의 묘를 살려야 할 것 이다.
외교부가 개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축소지향만이 개혁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세계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외교부를 한국적 표준에 맞추어 개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제 세계표준과 한국이 처한 외교 현실에 맞게 외교부 개혁의 방향을 재정립해야 할 것이다.
/연세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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