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방송사가 신축건물의 실내공기에 유독성 물질이 다량 포함돼 있다는 신년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낸 후 새 건물과 관련된 질병인 '새집 증후군'에 대한 우려가 급격히 확산되고 있다. 실내공기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공기청정기와 천연소재 건축자재 등 친환경 제품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신축아파트 입주를 기피하고 원인 모를 각종 질환을 신축 건물 탓으로 돌리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지난해 11월 중순 경기 파주시 신축 전원주택 단지에 입주한 신경외과 전문의 류모(40)씨. 이사 직후 생후 8개월 된 아이가 원인 모를 아토피성 피부염에 시달렸는데도 병원 치료로 완치되지 않아 마음 고생을 해온 그는 최근 방송을 시청한 후에 해결책을 찾았다고 직감했다. 그는 메스꺼웠던 냄새 등이 아이에게 치명적이었던 것으로 판단하고 집안에 탈취기를 설치했다.
류씨 같은 신축건물 입주자나 각종 피부 및 호흡기 질환을 오래 앓아온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정보공유와 대안 모색에 나섰다. '환경의 역습'이라는 인터넷 카페는 900명이나 회원으로 가입, 각종 피해사례를 나누고 있다.
실내공기의 유해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공기청정기나 탈취제가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한 인터넷 쇼핑몰 관계자는 "공기청정기는 대당 10만∼70만원으로 고가이고 효과가 눈에 보이지 않아 예년에는 황사철에나 약간 판매됐는데 새집 증후군으로 이번 달에만 30% 이상 판매량이 급증했다"라고 말했다. 대구에 본사를 둔 악취제거 회사도 이달 들어 서울 경기 일대 전원주택 400가구 이상에 자사제품을 설치했으며, 벽면 전체를 코팅해 유독물질 배출을 막는 업체도 하루 30∼40건의 문의전화를 받고 있다.
아파트를 신규분양 받은 사람들 가운데는 집을 전세로 내놓은 뒤 3∼4년 후 입주하겠다는 경우도 많아졌다. 새집 증후군에 대한 걱정이 자칫 분양률 저하로 이어질 것을 우려한 건설회사들은 별도의 친환경팀을 가동하거나 대학연구팀과 함께 친환경 자재 개발에 나서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대기업 건설회사 관계자는 "친환경적인 자재 개발 없이는 불황을 타개할 수 없게 됐다"는 한마디로 최근의 분위기를 표현했다.
전문가들은 새집 증후군에 대한 관심이 유해 건축자재를 규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신용승 박사는 "유해물질의 하천 유입만 단속할 게 아니라 선진국처럼 각종 제품에 대해서도 유해 화학물질을 규제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신축건물 입주 기피증이나 막연한 불안감 조성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원대 윤동원 건축설비학과 교수는 "신축건물의 완공시점에 유해화학물질 기준을 완벽하게 맞추려면 엄청난 추가 비용이 들고, 그 부담이 고스란히 소비자 몫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환경공해연구소 김예신 박사도 "호흡기질환자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아니라면 신경을 그렇게 곤두세우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환경부는 다음 달부터 3개월 동안 완공 1년 이내인 신축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다중 이용시설 등에 대한 유해물질 조사에 착수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새집 증후군에 대한 우려가 확산돼 정확한 실태조사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며 "찜질방 의료기관 보육시설 등 실내공기 오염 가능성이 높은 건물도 함께 조사한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또 실내공기를 맑게 하기 위해 올해 5월30부터 시행되는 '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 관리법'을 엄격하게 적용해나갈 계획이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신재연기자 poet333@hk.co.kr
● 새집 증후군
신축 건물 거주자들이 마감재나 건축자재에서 배출되는 휘발성유기화합물(VOCs)로 인해 일시적 또는 만성적인 각종 질환을 호소하는 것을 일컫는다. 영어로는 SHS(Sick House Syndrome) 또는 SBS(Sick Building Syndrome)로 불린다. 1990년대 초 미국에서 5대 환경문제 중 하나로 부각되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지난해부터 아토피성 피부염, 천식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을 중심으로 피해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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