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우리 국민들은 어려울 때마다 홍수환(54·홍수환 박서사이즈 회장)의 4전5기(四顚五起) 신화를 떠올렸다. 네 번을 다운 당하고도 악착같이 일어나 상대를 눕힌 그 투혼은 개발연대 성장을 꿈꿨던 우리 국민들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그 신화의 뒤에 조순현(78·전 신도체육관장)씨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74년 아놀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승으로 누르고 WBA 밴텀급 타이틀을 획득한 홍수환은 2년 뒤 알폰소 사모라에게 패해 좌절기를 맞는다. 그런 그가 전기를 마련한 것은 77년 6월 다나카 후타로와의 재기전을 앞두고 새 매니저의 권유로 조순현씨를 스승으로 모시면서다. 당시 신도체육관장이던 조씨는 자신의 문하생들을 모두 무릎 꿇린 홍수환이 미우면서도 내심 제자로 삼고 싶어할 정도로 탐을 냈었기에 둘의 만남은 '찰떡 궁합'을 연출할 수 있었다.
홍수환은 새 스승 조씨에게 중요한 것을 배웠다. 펀치를 날릴 때 어깨에 힘 빼는 기술을 배워 체력소모를 방지함으로써 15회까지 뛰어도 스태미너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나카와의 재기전서 가볍게 승리한 홍수환은 77년 11월 파나마에서 WBA 주니어페더급 1위 카라스키야와 챔피언 결정전서 격돌한다.
"원정 가기 전의 일이었어요. 갑자기 어머니가 이번에는 꼭 다른 트레이너가 아닌 조 선생과 함께 가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하고 같은 호랑이 띠 동갑에다 관상도 좋아 꼭 맞는다는 거였지요."
홍수환은 경기 후 어머니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실감했다. 우선 조씨는 상대 선수에 대한 분석이 정확했다. 또 유난히 큰 조씨의 목소리가 승리에 결정적으로 도움이 됐다.
"파나마 원정경기장엔 1만6,000명이 들어찼습니다. 링에 오르기 전에 벌써 관중들의 열광 분위기에 완전히 압도됐죠. 선생님에게 '정신 차리기 어려우니 경기 중 흐트러지는 것 같으면 '침착해' 라고 한 마디만 외쳐 주십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2회전 카라스키야에 맞서 주먹을 날리던 홍수환은 상대의 주먹 한 방에 주저 앉았다. 오뚝이처럼 일어났지만 계속해 다운을 네 번이나 당했고 아나운서가 "역부족"이라 했을 정도로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3회 들어 홍수환은 기적처럼 회복했고 맹공을 퍼부은 끝에 상대를 뉘였다. "넘어질 때마다 관중들의 함성 속에서도 '침착해' 라는 한 마디가 왜 그리 크게 들리던지요. 아마 그 소리를 듣지 못했으면 끝내 링에서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홍수환은 조씨와의 만남을 필연이라고 믿는다. "선생님은 마치 예언자 같았습니다. 경기의 승패를 예측하는 게 너무 정확했지요. 또 나를 철저하게 관리해 주었습니다. 당시 나는 지금의 제 처인 옥희와 사귀고 있었는데 만나는 것까지 통제했지요. 경기에서 밀릴 때면 '야, 옥희가 보고 있어. 잘해'라는 말로 승부욕을 돋구었구요. 선생님의 한마디는 비타민 같은 활력을 주었지요."
그러나 홍수환이 조씨와의 만남에서 권투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인생을 배웠다는 사실이다. 95년 신도체육관을 그만둘 때까지 조씨는 권투인으로서 모범적인 삶을 살았다. 제자 중 뛰어난 선수는 없었지만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고, 모범적인 가장으로서 자녀들도 모두 훌륭하게 키웠다고 한다. 그렇기에 홍수환은 그를 '영원한 스승'으로 모신다.
"경기를 앞둔 어느 날 점심식사 때 선생님이 오기 전에 팀원들이 먼저 밥을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뒤 늦게 오신 선생님은 그것을 보고 화를 벌컥 내며 나갔지요. 그리곤 5일을 굶으셨습니다. 우리들이 백배 사죄하고서야 마음을 돌리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스승에 대한 예절을 행동으로 가르치신 거지요. '링 위가 아니라면 우리는 늘 선한 사람, 선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지금도 귀에 생생합니다."
/유승근 기자 us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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