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 요란하게 울어대는 기차 소리에 당신은 오늘도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현관 문을 나서는군요. 만 8년을 하루같이 이 시간만 되면 일어나는 당신의 모습이 오늘따라 유난히 애처로워 보입니다.지난 여름에는 감기를 꼬리처럼 달고 다녔고, 요즘에는 손발에 동상을 안고 지내는 당신, 지난해까지만 해도 당신에게는 흰 머리가 드물었는데, 이젠 셀 수 없이 많군요. 이마 주름도 많이 늘었네요.
지난해는 우리 가족에게 힘든 한 해였습니다. 내가 1년의 절반을 병원 응급실에서 지내면서 수술을 3번이나 했고 집으로 옮겨서도 누워 지내야 했지요. 당신은 막걸리 한잔에 온갖 시름을 이겨내는 기색이었습니다. 카드빚을 얻어 약값과 병원비를 마련하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축 늘어진 당신의 어깨를 보면서 나는 마음속으로 여러 번 울었습니다.
지난 가을이었던가요. 당신은 혼잣말로 중얼거렸습니다. "뒤도 한번 돌아 보고 양 옆도 돌아 보면서 살아갈 여유가 있었으면…" "돈이 없으니 부모님께 효도하기도,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기도 쉽지 않군." 평소 과묵하고 낙천적이던 당신이 얼마나 마음의 고통이 컸으면 그런 말을 했을까요.
그렇지만 여보, 2004년의 희망찬 새해가 밝아왔고 우리에게도 희망이 찾아오고 있답니다. 저도 얼마 전부터 마을 뒷산에 올라가 매일 30분씩 걷다가 내려오곤 한답니다. 덕분에 건강이 많이 나아졌습니다. 의사 선생님도 내가 하루에 네 번씩 하는 복막 투석을 세 번만 해도 된다고 말씀하시더군요. 아내 노릇, 엄마 노릇 제대로 못했지만 묵묵히 지켜준 당신과 착하게 자라주는 아이들이 있어 난 참 행복합니다.
여보, 우리 감사하면서 살기로 해요. 인연이란 소중한 것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손톱 위의 모래 알처럼 어렵다는데, 우린 인간으로 태어났고 게다가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잖아요. 아들과 딸이 있어서 너무 감사해요. 감사한 것을 세어 보니 너무도 많네요.
올해는 술과 담배 조금씩 줄이기 바랍니다. 나도 당신의 어깨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는 우리 가족 모두가 활짝 웃을 날이 꼭 찾아오리라 믿습니다. 여보, 힘내세요. 그리고 건강하세요.
/최남숙·서울 성북구 하월곡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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