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볍씨는 바로 한반도 산(産)이다.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연구팀이 충북 청원군 소로리에서 1997∼98년 발굴한 탄화 볍씨 12톨과 2001년에 발굴한 46톨이 그것이다. 1998년 미국 지오클론 연구소와 2001년 서울대 AMS 연구실의 탄소연대측정 결과 1만3,000∼7,000년 전의 볍씨라는 분석이 나왔고, 이후 추가 연구 내용 등을 종합해 지난해 6월 세계 고고학대회에서 이 사실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세계 최고(最古)라고 인정돼왔던 중국 후난성 출토 볍씨보다 3,000년 앞선 것으로, 영국 BBC 인터넷판이 지난해 10월 뒤늦게 보도해 다시 한 번 관심을 끌었다. 우리 민족과 쌀과의 관계는 그만큼 깊다.■ 우리국민의 쌀 소비량은 급속히 줄어 지난해 한 사람이 하루에 평균 2공기도 채 안 먹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 조사 결과다. 핵 가족화와 인스턴트 식품의 범람이 주요 원인이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통계를 접하고 보니 놀랍다. 쌀밥 한 공기의 가격은 쌀 값만 친다면 200원이 약간 넘는다고 농협 경북본부는 계산했다. 껌 한통보다 싸다.
■ 반면 미국에서는 쌀 소비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쌀 소비는 연간 3%씩 늘고 있다. 쌀밥 또는 파스타 위에 고기나 채소를 얹어 먹는 아시아식 덮밥식당의 유행이 계기가 됐다. 슈퍼 냉동식품 매장에 덮밥이 등장했다. 미국에서 덮밥은 냉동식품의 격을 높인 동시에 편의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 쌀 산업연합회는 "쌀 신상품개발이 활기를 띠는 것은 미용식 건강식 자연식 등의 유행에도 관련이 있다"고 밝혔다.
■ 올해는 유엔이 정한 '쌀의 해'다. 그동안 먹거리 상품으로만 취급됐던 쌀이 이제는 '삶이며 문화'임을 선언한 것이다. 유엔은 기아에 허덕이는 8억 인구를 구하려면 쌀 생산을 늘리기 위한 국제적 공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같은 '쌀의 해'는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쌀시장 개방 때문이다. 농촌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외국 쌀이 몰려올 경우, '농촌을 지키기 위해 어떤 경우라도 수입 쌀을 구입하지 않겠다'고 대답한 비율은 44.5%에 머물렀다. 이에 연구원측은 "수입 쌀 구입경험이 없고 국산 쌀에 대한 애착이 강한데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예상 밖"이라고 했다. 우리 농업이 가야 할 길이 얼마나 험한지를 잘 말하고 있다. 쌀과 관련된 골치 아픈 현안은 죄다 선거 후로 미루고 싶어 하는 정부와 정치권 일각의 안이한 자세가 더 문제다. '선거'가 밥 먹여주지 않는다.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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