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의녀로 궁궐에 되돌아간 장금이가 궁녀들의 피부 관리며 발 관리에 시달리고 있었다. 장금의 동료 의녀가 “나는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의녀가 됐다”고 회의하는 것을 보면서 현대의 의사들이 떠올랐다.취재중 만나는 의사들은 크게 둘로 나뉜다. 대학병원의 ‘교수님’과, 개원한 ‘원장님’이다. 새로 도입된 시술법에 대해 취재라도 할라치면 ‘교수님’들은 들으나마나 “객관적 근거가 없다”고 답하기 십상이다. 그들에게 환자는 가르치는 대상이며, 환자가 몰린다고 반가운 것도 아니다. 반면 ‘원장님’들은 “의학의 발전”을 위해 간혹 모험도 하고, 환자 아닌 고객을 모시며, 자신에 대한 PR에 매달린다.
그런데 소위 잘 나간다는 피부과, 성형외과의 개원의를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환자들이 하도 요구가 많아 모시기가 어렵다”거나 “의사가 아니라 서비스업 종사자”라며 자조하곤 한다. 생명을 구하는 의사가 되기 위해 피땀 어린 수련 과정을 거친 끝에 결국 ‘궁녀 뒷바라지’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의대 교수에 대한 존경도 못 받는다”며, 실력이 좋아도 의원이 될 수 없는 의녀의 운명을 한탄한다.
그렇다고 의대 교수들은 ‘명예’에 자족할까? 교수는 교수대로 “의사는 돈 못 버는 직업”이라는 말이 입에 붙었다. 수업 뿐 아니라 진료에 시달리고, 진료과목에 따라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병원에 매달려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에 비하면 넉넉지 않은 보수라는 것이다. 교수 월급과 의사 월급을 둘 다 받는 의사들의 봉급이 평균적으로 “돈 못 버는” 수준은 아닌데도 불구하고 피해의식이 크다. 문제는 개원해 한 달에 수천만원의 순익을 남기는 동료 의사, ‘4년(또는 6년)밖에’ 공부하지 않고도 1억 넘는 연봉을 받는 일부 고소득자를 볼 때마다 박탈감에 시달리는 것이다.
의대 교수와 개원의는 많은 점이 다르지만 사실 의녀만큼 운명적인 것은 아니다. 그 차이는 월급쟁이냐, 경영인이냐는 차이이기 때문이다. 한 회사를 자기가 경영하는 사람과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은 업무영역이 다르며, 일하고 사람을 대하는 마인드가 같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다만 의사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직종이어서 누구나 경영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직종과 다를 뿐이다.
차라리 의대생 때부터 관련된 수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의학적 교육 뿐 아니라 보상에 대한 균형감각, 요령있게 개원하는 법, 정직하게 경영하는 법을 가르쳐야 할 때다. “의사에 대한 명예를 버린 대가로 돈을 번다”는 왜곡된 의사상 대신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 데 대한 대가로 돈을 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무분별한 시술도 그래야 사라질 수 있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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