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설 귀성은 혹한과 폭설로 여간 힘들지 않았다. 대개의 한국인은 이 '통과의례'를 무사히 마치고 일상으로 복귀했다. 그러나 위구르족 여대생 미라는 아직 고향에 머물고 있을 것이다. 베이징에 유학 중인 그의 고향 가는 길은 기차여행 48시간, 버스 7시간의 대장정이었다. 중국인을 보면, 우리가 귀성을 멀고 힘들다고 불평하는 것이 미안하다. 중국인이 기차와 버스, 배 등을 옮겨 타다 보면 귀성에 열흘이나 걸린다고 한다. 중국의 설(춘지에·春節)에는 연인원 19억명 정도가 이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3,900만명이 움직인 것으로 추산되었다. 아시아인의 못 말리는 귀소본능이다.■ 미국에서도 아시아인의 설 쇠기는 유별나다. 해마다 그렇듯이 수많은 아시아인은 전국에서 거리행진을 하고 설 축하행사를 벌였다. 대형 판매회사는 설맞이 세일과 광고, 인사장을 보내 판촉행사를 마련했다. 음력이 표시된 달력도 서비스됐다. 외신들은 '산타클로스만 보이지 않을 뿐, 마치 크리스마스 같다'고 전한다. 클린턴 전 대통령도 "설은 우리 국민생활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풍습과 문화에 의해 얼마나 풍요로워졌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라고 함께 기뻐한 적이 있다. 설 쇠는 아시아계는 주로 한국과 중국, 베트남 출신들이다.
■ 설에는 동아시아인의 뿌리와 긍지가 담겨있다. 중국에서는 섣달 그믐날 온 가족이 모여 푸짐한 식사를 즐긴다. 바둑이나 마작을 하다가 밤 12시가 되면 폭죽을 터뜨린다. 대만과 홍콩도 비슷하지만 정월 대보름까지 오색찬란한 등불 장식 속에 축제행렬이 이어진다. 베트남에서도 설은 전통적 농민의 봄축제가 성대하게 열리는 최대의 명절이다. 일본은 그렇지 않다. 일찍이 재빨리 '탈아입구(脫亞入歐)'의 기치를 내걸었던 일본은 서양식 양력에 맞춰 풍습과 생활을 바꾸었다. 그들은 양력 설(쇼가쓰·正月)에 신사를 참배하는 것으로 무미건조하게 한해를 시작한다.
■ 우리의 '신정(新正)'이라는 명칭에는 일제의 잔재가 진하게 묻어 있다. '새날' '새해의 날'로 고치든가, 하다못해 '양력 설'이라는 이름이 더 어울릴 것이다. 관계자들의 무신경과 나태가 한심하다. 설을 쇠는 모든 지역에는 설 자체가 축제다. 내외국인 모두에게 축일이다. 우리도 설맞이 축제를 좀더 규모 있고 체계적으로 벌였으면 한다. 그러나 문득 엊그제 TV에서 본 연변 동포와 자녀들의 처지에 마음이 아프다. 부모가 한국에서 일하는 바람에, 몇년씩 생이별한 아들딸이 절반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들에게도 설의 기쁨이 찾아들도록 배려하는 길은 없을까.
/박래부 논설위원 parkrb@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