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식단을 보면 2주에 한번 꼴로 점심에 비빔밥이 나온다. 이 비빔밥에 빠지지 않는 것이 달걀 프라이인데 한 산부인과 교수는 오늘도 달걀 노른자는 한쪽으로 빼놓고 먹지 않는다. 삼겹살이나 꽃등심같은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고 나서 나오는 맛배기 냉면을 먹을 때 얹혀 나오는 삶은 달걀 반쪽도 마다하기는 마찬가지다.예전에는 어쩌다 시험을 잘 보면 뜨거운 밥에다 날 달걀을 비벼먹는‘상(賞)’을 받기도 했고, 소풍갈 때나 외갓집에 다녀올 때 외할머니가 싸주신 삶은 달걀을 신문지에 싼 소금에 맛있게 찍어먹던 추억이 새롭다.
그러나 요즘은 기차를 타도 삶은 달걀을 까먹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신문ㆍ방송에 온통 콜레스테롤의 해악에 대한 기사가 넘쳐 나면서 달걀 노른자가 콜레스테롤을 높이는 주범이 돼버린 것이다. 그러나 동맥경화와 심장병, 뇌졸중의 주 원인으로 알려진 콜레스테롤이 음식으로 섭취되는 것은 10~30% 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70~90%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의 부산물에 의해서 간에서 만들어진다. 그나마 음식으로 섭취하는 콜레스테롤은 30~50%만 장에서 흡수되고 나머지는 대변으로 배설된다.
콜레스테롤을 많이 먹어도 사람들의 70%는 콜레스테롤이 상승하지 않는 비반응자이고 30%는 섭취량이 많게 되면 조금씩 증가하게 된다. 심지어 하루에 달걀을 25개씩 먹어도 혈중 콜레스테롤이 정상인 사람도 있을 정도다. 즉 콜레스테롤을 많이 섭취하면 이것을 조절하기 위해 장에서의 섭취가 섭취량의 10% 이하로 자동조절되는 신비한 기능을 우리 몸은 가지고 있다.
서양인에게 심장병이 훨씬 많은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과연 이러한 현상이 이민 간 동양인에게도 많은가 하는 연구가 있었다. 그 결과 일본 본토인, 호놀룰루 이민자, 샌프란시스코 이민자 사이에 콜레스테롤 섭취는 차이가 없었지만 심장병 사망률은 호놀룰루 이민자가 본토인의 두배, 샌프란시스코 이민자는 본토인의 세배나 되었다. 원인은 콜레스테롤보다 포화지방 섭취율이 본토의 7%에 비해서 호놀룰루 13%, 샌프란시스코 16%로 증가된 것이 주 원인이었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남자 3만7,851명과 여자 8만82명을 각각 10년, 15년간 추적 조사한 결과, 하루 하나 정도의 달걀 섭취는 심장병이나 뇌졸중 발생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반면 당뇨병 환자에서는 달걀 섭취가 심장병 발병률을 높였다. 아울러 육류 기름과 튀긴 기름도 심장병과 뇌졸중 발병을 높인 것으로 보고 되었다.
일본에서 남녀 1만명을 14년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여성의 경우 달걀을 하루에 두개 이상 먹을 때는 심장사망률이 두배 느는 것으로 돼 있다.
달걀 노른자는 콜레스테롤도 높지만 우리 몸에 꼭 필요한 ‘레시틴’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다. 이것은 콜레스테롤 상승을 막아준다. 또 달걀에는 양질의 필수 아미노산이 있어서 특히 어린이나 노인에게는 꼭 필요한 식품이다.
달걀을 일부러 먹을 필요는 없지만 잘못 알려진 의학상식 때문에 음식에 나온 달걀을 빼놓거나, 먹으면서 불안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오히려 달걀 노른자보다 더 조심해야 할 것은 냉면 먹기 전에 먹은 빨간 고기나 튀김이다.
/고려대 구로병원 손환기내과 교수
입력시간 : 2004-01-2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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