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독일에서 토지를 몰수당했던 옛 동독 농민들에게 보상의 길이 마련됐다.유럽인권재판소는 22일 "독일 정부가 통일 후 옛 동독 농민 소유의 토지를 무상 몰수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7만 여명에 달하는 옛 동독 토지 소유주들의 배상 소송 러시가 예상되는 가운데 독일 연방정부와 주정부는 재원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사태의 발단은 60년 전인 2차 세계대전 직후로 돌아간다. 당시 소련 치하의 동독 정권은 45∼49년 토지개혁을 통해 동유럽 지역에서 고향을 찾아 돌아온 귀국민 등에게 농지를 불하했다.
하지만 이 농지는 이후 공산주의 정책에 따라 협동농장 소유로 귀속돼 농민들은 반 세기 가까이 소유권을 주장하지 못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공식 통일(90년 10월 3일)되기 전인 90년 3월 민주화 바람 속에 구성된 동독 의회는 협동농장 토지의 원 소유주나 후손들에게 소유권을 되돌려 주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92년 통일 독일 의회는 새 법률을 제정, 통일 전 실질적으로 농사를 지어왔던 농민의 토지를 제외한 나머지 소유주들의 토지를 무상으로 몰수해 주 정부 소유로 만들었다.
50년 만에 토지를 되찾는가 싶었던 옛 동독지역 토지 소유주 5명은 이에 반발, 소송을 제기했으나 2000년 독일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내리자 유럽인권재판소에 소송을 제기했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날 판결에서 "독일이 통일 이후 특수한 상황에 있었으며, 통독 의회는 옛 동독 의회가 제정한 법률을 폐기할 권리도 갖고 있지만 이는 공공 이익과 개인 권리 간의 균형 속에 이뤄져야 한다"며 "토지를 몰수하면서 소유주에게 보상을 해 주지 않은 것은 유럽인권협약의 사유재산 보호규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판결은 비록 독일 정부의 배상 의무나 액수를 언급하지 않았고, 앞으로 항소심 절차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이미 대세는 기운 분위기다. 독일은 유럽인권협약에 서명했기 때문에 유럽인권재판소의 판결을 준수해야 한다.
독일 언론들은 통일 과정에서 농토를 무상 몰수당한 농민이 약 7만 명에 이르며, 이번 판결에 따른 배상액은 최소 6억∼10억 유로(약 7,000억∼1조 2,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도했다.
판결 직후 일각에서는 배상을 위한 특별세 도입설까지 나도는 등 독일은 또다른 통일 후유증으로 한동안 몸살을 앓을 전망이다.
독일의 토지 보상문제는 북한에 땅을 두고 온 한국의 월남 실향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통일 전 잠시나마 전 정권 아래서 토지 소유권을 인정받았던 사람들의 재산을 통일 정부가 무상으로 몰수한 점을 지적했다는 점에서 우리 실향민들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김용식기자 jawoh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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