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유전병을 앓는 자녀를 바라봐야 할 때가 아닐까 싶다. 자신으로 인해 천금만금 같은 아이가 고통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천 갈래 만 갈래 찢어질 듯이 아프다. 최근 이런 부모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 일어났다.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의 무차별적인 진료비 삭감에 맞서 혈우병 지정병원들이 지정병원 포기 의사를 밝힌 것. 혈우병 환자의 80% 이상을 치료하는 혈우병 지정 병원의 대표주자인 경희의료원이 얼마 전 지정병원 포기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나머지 대다수 지정병원도 그 대열에 가세할 태세다.
이에 따라 3,000여명에 이르는 혈우병 환자들은 갈 곳을 잃게 됐다. 현재 혈우병 지정병원은 서울대병원, 연세의료원, 경희의료원, 한양대병원, 적십자병원, 경북대병원, 충남대병원, 전남대병원, 부산백병원, 전북예수병원 등 모두 10곳.
언제나 그렇듯 발단은 '돈'이다. 그 동안 정부가 희귀병으로 정한 혈우병 환자는 전체 치료비 가운데 입원비 등 보험 비급여 항목만 부담하면 됐다. 나머지 치료비 가운데 20%는 정부기금에서 충당하고 80%는 심평원 평가를 거쳐 건강보험공단에 치료비 보전을 청구해 왔다. 그런데 심평원이 최근 혈우병 치료의 필수인 혈액 응고제를 과다 사용으로 분류, 병원이 막대한 손해를 입게 된 것이다. 경희의료원의 경우 1명의 혈우병 환자를 치료하고 10억원을 삭감당하는 등 지난해에만 혈우병 환자를 치료하고 모두 30여억원의 손해를 보았다.
그러나 경희의료원 관계자는 "지금까지 혈우병 환자들을 고려해 적자도 감수해 왔지만 더 이상은 무리"라며 "현실성 없는 정책이 혈우병 환자를 길거리로 내몰고 있다"며 정부측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한국혈우재단 관계자도 "정부가 관련 규정을 개정하지 않으면 3,000여 혈우병 환자는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해야 할 판 "이라며 우려를 표했다.
정부가 말로는 희귀병 환자 치료에 적극 나선다고 하지만 실제론 보험급여 삭감에 치중하느라 정작 국민 건강에는 뒷짐을 지고 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다.
권대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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