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노사문제에 대해 스스로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투명한 경영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덜 가진 기업도 많이 있을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14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노사관계의 변화를 위해 사용자측의 의식 변화를 주문했다. 대립적 노사관계의 주범으로 지적돼온 일부 전투적 노조 못지 않게 경직된 사용자들의 태도 역시 상생의 노사관계에 장애가 되고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노동계 관계자들은 노조 또는 노동자를 경영의 파트너로 인정하기보다는 걸림돌로 여기는 '전근대적 노조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업들이 아직도 있다고 말한다. 노동부 노민기 노사정책국장도 "노사 분규가 장기화하거나 고질적으로 노사가 갈등을 빚는 사업체들은 대부분 노조 배제적 경영으로 갈등 관리에 소홀한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극단적이지만 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하는 것을 수용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실제 지난해 8월까지 발생한 노사분규 255건 가운데 신규노조 인정 여부를 놓고 노사가 갈등을 겪은 경우가 20곳(7.8%)에 이른다. C병원은 노조 활동을 억압하기 위해 사측이 조합원들을 업무상 따돌림하는 등 정신적으로 피해를 주었고, 이같은 사실이 인정돼 노조원 5명이 지난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따른 정신질환으로 산재판정을 받기도 했다. 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무노조경영을 유지하고 있는 삼성의 계열사인 신라호텔 삼성플라자 등이 지난해 노조 설립을 추진했으나 결국 유명무실하게 된 것에서 알 수 있듯 노조의 존재 자체를 껄끄러워하는 사용자들이 아직 많다"고 말했다.
노조의 변화 속도에 비해 사용자측이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지난해 금속노조와 100개 금속부문 사업장이 중앙 산별교섭을 벌였으나 사측은 교섭이 시작된 후에도 대표교섭단을 구성하지 못하는 등의 시행착오를 빚었다. 게다가 일부 사용자들은 노사가 합의한 '임금저하 없는 주5일제 조기 도입'의 수용을 거부, 이로 인해 자동차부품제조업체 T사 노조가 파업을 벌이는 등 노사 분규의 불씨를 제공했다. 노동운동은 산별 단위로 결집, 사회정책적 차원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옮겨가고 있으나 사용자측의 대응은 경직돼있고 후진적이다 보니 노사 갈등을 야기한다는 것이다.
노조 차원에서 상급단체의 리더십이 문제가 되듯이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단체의 역할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노사관계보다는 회원사의 여론에 더 신경을 써 노사관계의 대립각을 더 날카롭게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손배·가압류 관련 노·사·정 사회협약 체결 때도 경총이 회원사의 반발을 고려해 '기존의 손배·가압류 해결 노력'이라는 내용을 합의문에 포함시키는 데 반발, 합의가 지연됐을 뿐만 아니라 선언적 협약에 그치고 말았다.
민주노총 손낙구 교육선전실장은 "경총 등이 회원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기업들의 대노조 공격창구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라며 "무작정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경총내에서 생산적 토론을 통해 정책적 대안을 생산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파업시 '무노동무임금'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데도 사용자의 책임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다. 눈앞의 피해가 커지다 보니 사용자측이 노사 합의의 조건으로 타결 격려금을 지급하는 등 무노동무임금의 원칙을 교묘히 피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경영자단체도 비판을 제기하고 있다. 노사정위원회 관계자는 "사업장 단위에서 사용자측이 노사관계에 대한 투자에 인색하고 노조 또는 노사협의회와의 대화도 부족하다"며 "노사관계 관련 법·제도에 대한 사용자의 무지를 개선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임·단협 이외에는 노사가 만날 기회조차 없는 현실 속에서는 임·단협 교섭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다 보니 효율성도 떨어지고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 노조의 경영참여 "시각차"
현대자동차 노사의 지난해 임·단협 합의안에 대해 재계는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이사회 개최시 노조에 사전 통보, 해외공장 설립 및 이전시 노사 공동 심의 등의 합의사항을 두고 노조의 경영권 침해를 우려한 것이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현대차 노사가 합의한 노조의 경영참여 수위는 경영권 침해를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노조의 경영 참여 요구에 대한 재계의 지나친 위기 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지난해 일반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44.8%가 노조의 경영참여에 대해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통해 기업의 위기를 극복하는 등 실속을 추구한 사례는 미국의 AT& T, GM새턴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기업인들은 노조 또는 노동자의 경영 참여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노동자의 경영참여 문제는 '회사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국노동연구원 최영기 선임연구위원은 "상당수 기업들은 소유경영자 중심의 경영체제를 유지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조 또는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수용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며 "이 때문에 노조 또는 노동자를 기업의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기업경영문화로 인해 노조가 선진국과는 달리 사측에 협력적이지 못하고 심한 경우 사측에 대한 불신도 뿌리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근로자의 경영참여 확대 방안을 논의했으나 노사간의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지난해 논의를 종결했다.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현행법상으로도 30인 이상 기업은 노사협의회를 설치, 노동자 경영참여를 보장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참여 범위를 어느 수위까지 확대하는가가 논란거리. 노동계는 현행법에서 노사간 협의 사항으로 돼있는 신기계 및 기술 도입 작업 공정의 개선 경영상 사정으로 인한 인력 배치전환·재훈련·해고 등 고용조정사안까지도 의결사항으로 변경, 결정 과정에 노동자측의 입장이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재계는 기업비밀에 해당하는 사안들을 노동자측에 보고·협의해 공동의결하는 것은 경영권 제한이라고 반대했다.
노사관계 저해 요인은
노사가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등 불신의 벽이 높아, 노사관계 개선의 걸림돌로 지적되고 있다.
한국노사관계학회가 2002년 노사 양측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사측의 81.1%가 '노조가 회사의 지불 능력에 비해 높은 임금 인상을 요구한다'고 불만을 나타냈고 노조측도 81.6%가 '경영자측이 노조의 능력에 비해 많은 희생과 양보를 요구한다'고 답했다.
노조측 응답자들은 같은 설문조사에서 노사관계를 저해하는 노조측 주요 요인으로 노노갈등, 노조의 투쟁성 등을 꼽았다. 반면 사용자측은 노조에 대해 상급노조 및 외부노조의 간섭, 회사경영에 대한 이해 부족, 불법 파업 등의 문제를 주로 지적, 시각을 달리했다. 특히 노조측은 노노갈등이 존재하는 등 단위노조가 갈등을 조정할 만한 리더십이 부족하다고 자성, 산별교섭 등의 대안을 제시했으나 이 같은 노조의 문제점을 간과했기 때문인지 사측의 대응은 발빠르지 못해, 또다른 노사간의 갈등 요인이 됐다.
사용자측에 대해서는 기업의 노조활동 탄압 및 반노조 정서가 대표적으로 지적됐다. 또한 권위주의적 기업문화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됐는데, 사용자측의 권위주의적 태도는 노조와의 경영정보 공유 및 노사 협의를 어렵게 만드는 한편 교섭 현장에서는 노조 대표에 대한 부적절한 태도 등으로 불필요한 갈등을 유발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문향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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