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피에르 드 라클로의 소설 ‘위험한 관계’(1782)만큼 즐겨 영화화되는 원작도 없는 것 같다. 스티븐 프리어즈, 밀로스 포먼, 이재용 감독 등이 ‘위험한 관계’를 원작으로 삼았다.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_조선남녀상열지사’는 원작에서 질투와 배신의 삼각 관계, 18세기식 인과응보를 거의 그대로 빌려왔다.
‘스캔들’의 요부 조씨 부인(이미숙)과 ‘발몽’의 요부 메르테이유 후작 부인(아네트 베닝)를 비교하는 것도 흥미로운 감상법이다. ‘스캔들’과 ‘발몽’의 뒤엉킨 관계를 만든 원인 제공자가 바로 이들 시대를 앞선 요부이기 때문이다. 세도가의 정부인인 조씨 부인은 남편이 소실을 들이려 하자 발끈해 사촌이자 바람둥이이며 첫사랑인 조원(배용준)을 불러들인다. 소실이 될 아이를 먼저 차지하라고 부추기기 위해서다. 내친 김에 두 ‘연애선수’는 열녀문까지 하사 받은 숙부인 정씨(전도연)의 정절을 두고 내기를 건다.
옷섶 사이로 살짝 속살을 비치면서 이미숙은 은근히 도발적이고, 요염하고, 지적인 매력을 발산한다. ‘하오체’의 대사 속에 담은 경쾌한 구어체 대사, 춘화를 그리는 능청스러운 바람둥이 배용준의 매력도 즐길만하다. 심리묘사보다 화려한 스타일에 치중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18세가.
발몽
40대 초반의 이미숙(43)이 ‘스캔들’에서 보여주는 원숙한 매력과 비교한다면 ‘발몽’(Valmont) 에서 메르테이유 후작 부인 역을 맡은 아네트 베닝은 조금 더 대담하다. 바람둥이 발몽(콜린 퍼스)을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 자기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모습은 영화의 압권이다.
입은 듯 만 듯, 보일 듯 말듯한 모습으로 발몽의 애를 태운다. 정절녀 무너뜨리기 내기에서 발몽이 이겼는데도 아네트 베닝은 약속한 그 ‘선물’을 줄 생각이 없다. 영화계에 막 데뷔한 당시 31세의 아네트 베닝의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영화다. 아네트 베닝을 비롯해 메그 틸리 등 여배우들이 입고 나온 호화스런 18세기 의상도 눈을 즐겁게 한다.
‘아마데우스’를 만든 밀로스 포먼 감독이 ‘아마데우스’ 이후 5년만에 내놓은 1989년 작품.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배리 린든’처럼 촛불을 이용해 사치스러운 18세기 귀족사회를 연출했다. 섬세한 심리묘사로 귀족 사회 내부의 질투와 배신 그리고 부패한 생활상을 그렸다.
10대에서 50대까지 넘나드는 탕아 발몽의 매력이 생각보다는 못한데, 콜린 퍼스의 연기가 달린다기보다는 즐겁고 상냥한 악녀 아네트 베닝이 더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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