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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무대의 카리스마 박정자 <37> 뮤지컬 배우라 불러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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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력서]무대의 카리스마 박정자 <37> 뮤지컬 배우라 불러주오

입력
200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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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바람이 불고 있다. 젊은 관객들이 온통 뮤지컬로 몰린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긴 나도 지난해 공연한 '토요일 밤의 열기'만 무려 네 번이나 봤을 정도니 더 말해 무엇하랴. 그렇게 자주 보면서도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다. 무대 위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후배들이 꽃처럼 예뻐 보인다.한편으론 "야, 우리나라 뮤지컬이 이렇게 급성장을 했어, 제법인데"하고 놀라기도 한다. 한국 뮤지컬이 걸어온 험난한 길을 잘 알기에 기쁨은 더욱 크다. 쑥스럽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는 1세대 뮤지컬 배우이기도 하다. 뮤지컬이란 말조차 낯설던 1960, 70년대 지금은 서울시립 뮤지컬단이 된 국립가무단에서 임영웅 선생이 연출한 '상록수' '대춘향전' 등에 출연했다. 임 선생은 68년 한국 최초의 본격 창작 뮤지컬인 '살짜기 옵서예'를 연출한 우리나라 뮤지컬의 대부다. 나는 '지붕 위의 바이올린' '한 여름 밤의 꿈'에도 참여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꽤 일찍부터 뮤지컬에 출연한 셈이다.

내가 출연한 뮤지컬 가운데 가장 사람들의 기억에 남은 건 아마 '넌센스'일 것이다. 50살 되던 때, 그러니까 '엄마는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를 만나기 직전이었다. 극단 대중의 조민 대표가 '넌센스'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넌센스'는 수녀들이 등장하는 코믹 뮤지컬로 식중독이 휩쓸고 간 동네의 수녀원에서 살아남은 5명의 수녀가 숨진 수녀들의 장례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공연을 여는 내용이다. 작품은 재미있었지만 나는 심드렁했다. 대본과 음악을 미국에서 그대로 가져왔기 때문에 버터 냄새가 너무 심했다. 게다가 다른 공연을 하고 있던 터라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했다.

그 뒤 '넌센스'가 공연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궁금해서 꼭 보려고 했지만 그때마다 일이 터져 보지 못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후 나는 엉뚱하게 '넌센스'를 하게 됐다. 97년 세계연극제를 치르면서 '한국연극협회'는 빚더미에 올라 앉았다. 그 빚을 갚을 묘책이 필요했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철저히 흥행이 보장되는 작품을 연극협회 주관으로 공연하는 것이었다. '넌센스'가 뽑혔고, 남은 문제는 누가 출연하는가였다. 당시 협회 이사장을 맡고 있던 정진수씨가 어느날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했다. 대학로에서 만나자마자 그는 다짜고짜 매달렸다. "양희경, 신애라, 하희라, 임상아씨가 출연할 예정인데 선생님이 원장 수녀 역을 맡아 '넌센스'에 날개를 달아 주십시오." 나는 그 말이 참 맘에 들었다. '넌센스'에 날개를 다는 일은 곧 나에게 날개를 다는 일이기도 하지 않은가!

나는 앞뒤 잴 것 없이 곧바로 '넌센스'에 몸을 던졌다. 몸을 던졌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당시 나를 제외한 4명의 출연자들, 그러니까 양희경, 신애라, 하희라, 임상아가 맡은 역은 모두 더블 캐스팅이었다. 각자 스케줄이 빡빡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일 나이 많이 먹은 나는 더블을 하지 않았다.

별로 바쁠 일도 없었고, 원체 더블이 싫었기 때문이다. 배역을 갈라서 남에게 맡긴다는 게 도저히 용납되지 않았다. '쌩쌩하게 젊은' 후배들도 더블로 하는 걸 혼자 매일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그나마 원장 수녀가 춤추는 장면이 많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넌센스'에 출연한 배우는 모두 굽 높은 검정 구두를 신었다. 구두를 신고 춤추는 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출연 배우들은 굽 낮은 신발로 바꿔 신었다. 그것도 나만 빼고서. 나는 끝까지 버텼다. 오기 때문이었을까?

'넌센스' 공연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은 날마다 미어터졌다. 지방 공연을 22 군데나 다니는 기록도 세웠다. 그 덕에 연극협회의 빚 상당 부분을 갚을 수 있었다. '넌센스' 공연 팀 회식이 열린 날 정 이사장은 내게 큰절을 했다. 아직까지 그렇게 기쁜 큰절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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