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어느날 다짐한 거야/여전히 용기 없는 나를 도와줄/하늘에서 하얀눈이 내리는 날/조그만 테잎을 내밀며/오래 전부터 너를 좋아하고 있었어'('눈 오던 날')스물은 소년보다 청년에 가까운 나이다. 하지만 유상봉(20·사진 왼쪽) 박경환(20)으로 이루어진 남성듀오 '재주소년'의 노래와 감성은 청년보다는 소년에 가깝다. 이들의 노래 '눈 오던 날' 속에는 좋아하는 노래를 골라 녹음한 테이프를 짝사랑 소녀에게 건네며 사랑을 고백하는 소년의 수줍음이 담겨 있다. 이들의 다른 노래 '귤'은 학교 급식에서 후식으로 나온 귤을 소재로 하고 있고 '비오는 아침' '수학여행 마지막 아침' 등 일상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한창 사춘기를 겪고 있는 소년의 일기장을 훔쳐 보는 듯하다. 그 예민한 감수성에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소년, 소녀 취향'의 사람이라면 그들의 열렬한 마니아가 될 가능성이 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한창 신도시로 개발되던 경기도 일산의 한 동네로 이사와 알게 된 이후 "(넘치는 감수성을 지닌 이들에게) 험악하기만 한 세상을 의지하며 살아 왔다"는 이 두 청년은 되바라진 요즘 아이들과 달리 "'러브 액추얼리' 같은 아기자기한 로맨틱 코미디를 즐겨 보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이며 사춘기 시절에는 '루시드 폴'의 어쿠스틱한 노래를 들으며 어려운 시절을 넘겼다"고 한다.
팀 이름 '재주소년'은 '제주소년'의 변형이다. 박경환은 현재 제주대 철학과에 다니고 있고 유상봉은 올해 한라대 생활음악과에 입학할 예정이다. 아름답고 조용한 제주의 환경은 이들을 더더욱 예민하고 생각 많은 청년으로 키워내고 있다. 이번 음반이 나오게 된 데는 둘이 함께 한 제주도 여행의 영향이 크다. "재작년 여름 3일 째 하던 아르바이트를 때려 치운 상봉이가 찾아왔어요. 그리고 무작정 여행을 떠나 완도에서 배 타고 제주도까지 가서 자전거 타고 섬을 일주했어요. 여행 후 만든 곡들이 담긴 데모 테이프가 기획사의 눈에 들어 음반을 내게 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음악을 알아본 이는 '문라이즈'라는 레이블을 설립한 델리스파이스의 김민규였다.
음반을 냈다고 해도 이들의 생활이 크게 달라지진 않을 듯하다. 방학이 끝나면 또 다시 제주도로 내려가 학교 생활에 몰두할 것이다. 다만 "내 이야기를 남이 듣게 돼 약간은 창피하고 민망하다"는것 뿐이다. 11일 홍대 앞의 클럽 'DGBD'에서의 공연 등 겨울 방학 동안 자주 무대에 설 예정이다.
/최지향기자·사진 류효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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