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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50년]이영하 "눈물의 빵" 곱씹으며 빙상정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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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 50년]이영하 "눈물의 빵" 곱씹으며 빙상정복

입력
2004.01.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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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월 17~18일마돈나 디 감필리오라는 이탈리아 소도시에서 열린 세계 주니어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이영하(경희고 3)는 3종목에서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금2, 은1개와 종합우승이라는 한국 빙상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내고 빙판의 독보적 존재로 등장했다.

첫날 남자 3,000m에서 훗날 세계 1인자가 된 에릭 하이든(미국)을 제치고 우승한 이영하는 다음날 1,500m 1위를 하이든에 빼앗겼지만 다시 5,000m를 석권, 2관왕에 종합점수 1위를 이루었다.

이를 계기로 강원도 인제군 원통의 산골에서 올라와 힘든 생활을 하는 홀어머니와 5남매의 단칸 셋방살이, 모래조끼를 입고 달리는 이영하의 초인적 훈련이 한동안 언론의 기사거리가 되었다.

이영하는 2남 1녀의 아버지가 되어서도 출전을 계속하다 86년 30세로 20년의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그는 고1때 처음 3,000m 한국신기록을 작성한 뒤 76년에는 전 종목 최고기록을 수립하는 등 총 51회 한국기록을 경신하고 79년에는 세계선수권 500m 동메달도 획득했다. 은퇴 당시에도 1,500m만 배기태에 의해 깨지고 나머지 8개종목 한국기록을 그대로 보유한 상태였다.

1981년 1월 25일

일요일 정오 지구 반대편인 남미 베네수엘라의 상크리스토발에서 외신을 타고 승전보가 날아들었다.

라파엘 오르노의 WBC 슈퍼 플라이급 타이틀에 도전한 김철호의 9회 KO승.

경기 초반 신장과 기량이 우세한 오르노에게 고전하던 김철호는 포인트에서 뒤지면서도 한방을 노리던 중 마침내 9회 상대의 복부에 왼손 펀치를 명중시켰다. 바로 한달 전 김태식마저 WBA 플라이급 타이틀을 억울한 판정으로 뺏겨 80년 한 해에 김성준 김상현 박찬희를 포함한 4명의 챔피언을 모두 잃고 허탈해 하던 팬들을 열광케 하는 희소식이었다.

당시 20세. 한국의 세계 챔피언 중 최연소였다. 포인트 위주보다는 힘과 맷집으로 일발필도의 호쾌한 경기를 하는 그는 78년 프로 신인왕전에서 4연속 KO로 플라이급 우승을 차지하며 '링의 대모'로 불리는 프로모터 심영자씨의 휘하에 들어갔고 80년 8월 국내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다.

본인은 오르노와의 경기에 앞서 "만약 진다면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뛰어 내리겠다"며 필사의 각오를 보였지만 큰 기대를 모으지 못해 방송사들도 중계를 시도하지 않았다. 이 타이틀은 82년 11월 6차 방어전에서 KO로 져 오르노에게 되돌려주었다. 은퇴 후 심영자씨 밑에서 88체육관 관장과 프로모션 대표를 맡아 문성길 김용강등을 키운 그는 복싱 시장의 침체가 겹치며 수억의 빚을 진 후 94년 잠적, 아직까지 미국에 머물고 있다.

1990년 1월 20일

서울 무역센터의 특설링. '돌주먹' 문성길은 탐색전 없이 처음부터 저돌적으로 몰아 붙였다.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 나나 코나두(가나) 역시 발빠르게 피하며 위력적 스트레이트를 뻗어댔다. 2회들어 문성길의 왼손 훅이 상대의 안면에, 오른 손 훅이 관자놀이에 적중해 두 차례 다운을 빼앗았다.

그러나 이내 무리하게 밀고 들어가다 코나두의 왼손 카운터 펀치에 문이 주저 앉았다. 3회에는 문성길이, 4회에는 코나두가 다운을 추가, 모두 5차례 다운이 나오는 대격전. '4전5기'로 유명한 77년 홍수환과 카라스키야의 WBA 주니어 페더급 타이틀전이후 가장 격렬한 난타전이었다.

그러나 10회에 들어가려다 도전자 문성길이 3회 상대의 버팅으로 입은 상처의 출혈로 인해 더 경기를 진행하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 규정에 따라 9회까지의 채점으로 문이 3-0 판정승을 거두었다.

89년 7월 카오코 갤럭시(태국)에게 WBA 밴텀급 왕좌를 내준지 6개월만에 정상에 복귀하고, 홍수환(WBA밴텀-주니어 페더) 최점환(IBF 주니어 플라이-WBC 스트로)에 이어 3번째 두 체급 석권을 이루는 순간이었다.

82,86 아시안 게임을 연패하고 85년 한국복서로는 전무후무한 세계선수권 우승을 이뤘던 그는 86년 12월 국내 복싱사상 최고 전속 계약금인 7,000만원을 받고 프로로 전향했으며 88년 8월 서울서 카오코 갤럭시를 누르고 최소전적인 7전만에 세계챔피언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었다. 이때도 상대버팅으로 인한 경기중단으로 5회까지의 채점으로 판정승을 거뒀던 문성길은 11개월만에 카오코와 가진 3차 방어전에서 계속 안면 공격을 허용, 0-3 판정패로 첫 타이틀을 상실했다.

WBC 슈퍼 플라이급 챔피언이 되어서는 4연속 KO방어(3방∼6방)라는 기록을 수립하며 롱런했으나 93년 11월 포항의 10차 방어전에서 호세 루이스 부에노(멕시코)에게 1-2로 판정패, WBA 주니어 밴텀급 챔피언과의 통합전으로 3체급 석권에 도전하려던 계획도 수포로 돌아갔다. 프로 전적 20승2패(15KO). 당시 30세, 실제 나이는 32세였다.

1998년 1월 17~19일

97년 1월 미국에 건너 간 박세리는 그 해 10월 미국 프로테스트를 1위로 통과, 98년 미 LPGA(여자프로골프협회) 투어 전 경기 출전권을 확보했다. 그리고 처음 나간 데뷔전이 시즌오픈 경기인 올랜도의 헬스 사우스대회.

첫날 이븐파에 공동 5위로 시작, 2일째에 1오버파를 쳐 공동 9위에 떨어지고 마지막 날 이븐파를 해 합계 1오버파로 공동 13위.

목표인 10위 내에는 들지 못했지만 심한 바람 속에서 좁은 페어웨이를 차분히 공략하는 박세리의 플레이는 높은 평가를 받았고 결국 4개월 후 메이저대회인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4일 연속 선두 끝에 11언더파로 첫 우승의 개가를 올렸다.

sky@hk.co.kr 유석근 편집위원

그때 그 사람/前 권투선수 문성길

문성길(41)은 링에서는 수없이 맞더라도 한방을 노리고 들어가는 저돌적인 파이터였지만 은퇴 후에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매우 보수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매 맞아 번 돈'을 잘 관리하며 안정을 누리고 있는 몇 안 되는 복서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의 이런 생활은 사회와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바탕이 된 것 같다.

그는 소속 프로모션으로부터 93년의 마지막 대전료 2억원 중 자신의 몫(57%)인 1억1,400만원을 못 받아 소송까지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은퇴하면 평생 이사대우를 해 주겠다고 했던 제약회사에 들어가 무료 광고에까지 출연했지만 말만 실장이지 대리 옆에 앉혀 놓고 일거리를 주지 않는 푸대접을 해 3년 만에 나왔다"며 울분을 토했다.

또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월드컵서 우승하고 프로로서도 세계 챔피언에 올라 누구보다 국위선양에 공헌했음에도 '병역 특례보충역 자격 획득(82년 11월 아시안게임)후 5년간 해당분야에서 복무해야 한다'는 의무기한을 지키지 못하고 8개월 전 프로 경기를 가졌다는 이유로 현역으로 입대 시킨 것은 참을 수 없이 억울한 일이라고 회상했다.

이런 애매한 규정을 제대로 설명해 주지 않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원망과 함께.

"91년 3월 스페인에서 3차 방어전을 하고 돌아 와서 바로 논산 훈련소에 들어갔어요. 경기가 끝나면 상당기간 보약과 고기를 먹으며 몸을 회복시켜야 하는데 훈련소에 들어가니 밥 밖에 없어 배가 터지게 먹고는 위장병이 생겨 고생했지요. 몸 관리를 잘 했으면 더 오래 뛸 수 있었을 텐데."

제약회사에서 나온 뒤에는 3년을 쉬다가 2000년 11월부터 강동구 둔촌동 주공아파트 앞에 '문성길 복싱클럽(476-7989)'을 열어 운영하고 있다. 복싱선수 지망생은 없고 월회비(5만원)를 저렴하게 받아서 그런지 회원이 2∼300명이나 된다고.

또 "아내가 중계동과 구리의 롯데마트에서 운영하는 철판볶음밥 집도 괜찮아 아들(고 1) 딸(중 1)과 가락동의 44평 아파트에서 별 걱정 없이 살고 있다"고 한다.

프로복싱에 프로모터나 지도자로 복귀할 생각은 없느냐는 질문에는 "우리 복싱계에는 선수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해 주지 않고 파이트머니를 떼어 먹는 사람이 많아서 싫다"며 "어려서 복싱을 같이 한 친구와 함께 곧 전남 여수에 '참장어 엑기스' 공장을 열 계획"이라고 소개.

"겨우내 뻘 속에서 동면하고 여름에만 2∼3개월 동안 잡히는 참장어는 숙취해소와 정력증진에 효과가 뛰어나 분명히 히트를 칠 것입니다." 그는 복싱 체육관을 계속 운영하면서 사업으로도 성공하는 게 꿈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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