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기문명의 한가운데에 살고 있다. 생활의 모든 분야가 전기코드와 연결되어 있는 세상이다. 요즘 기업과 매체가 '웰빙'이라는 말을 소비생활의 새로운 테마로 띄우는 경향이 있지만 이것도 전기문명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쓰는 전력의 약 40%를 원자력이 담당한다. 이만한 양의 전력은 수도권 전체가 필요한 전력과 맞먹는다. 이렇게 원자력의 혜택을 받는 반면에 또 한편으로 원자력으로 파생되는 부작용에 몸살을 앓고 있다. 바로 핵폐기물 처리 문제다. 이 이슈의 본질은 '안전성'이라는 기술적인 문제와 '수용성'이라는 정서적 문제가 얽혀 있다.■ 핵폐기물이 유해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더구나 사용 후 연료는 수 만년간 방사능을 뿜어내는 독성 물질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위험물질을 격리하여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대다수 과학자들은 긍정적인 답변을 내놓고 있다. 선진국이 모두 지하보관 방법으로 처리하고 있으며, 앞으로 압축처리 및 보관기술의 발달로 폐기물관리는 더욱 안전해질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가동중인 원전임시보관소 보다는 영구시설을 만들어 보관하는 것이 훨씬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대체로 공감을 준다.
■ 그러나 보다 중요한 문제는 국민의 수용의사다. 그것은 안전성에 대한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신뢰를 기초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다. 안면도에서 시작해 위도에 이르기까지 17년 동안 핵폐기물 처리장 부지선정에 실패한 연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전문가의 안전성 진단과 정부의 의지만 갖고 행정편의적으로 일을 추진했기 때문에 조그만 난관을 만나도 일이 일그러지고 만 것이다. 부안 사태의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 서울대 교수들이 관악 캠퍼스에 방폐장을 유치하자는 제안을 해서 또 한차례 논쟁이 벌어졌다. 기발한 아이디어였지만 현실성은 희박했다. 그러나 교수들의 제안이 문제해결에 새로운 자극을 준 면이 있다. 이유는 두 가지. 첫째,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 주민들이 이 문제를 막연한 '국가의 문제'가 아닌 구체적인 '우리의 문제'로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둘째, 화석연료 원자력 대체에너지 등을 종합해서 현실적인 대안을 중심으로 21세기 에너지 정책을 재조명할 기회다. 즉 원자력이 차지할 비중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폐기장 문제의 돌파구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김수종 수석논설위원 sj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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