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A씨는 최근 수억원대의 외상을 회수하지 못해 본사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 B경찰서와 1년 단위 계약을 맺고 순찰차 휘발유와 난방유 등을 공급하는 A씨는 지난해 7월 이후의 기름값 1억2,000만원을 받지 못했다. A씨는 담당자에게 채근도 해봤지만 "경찰청에서 예산이 나오지 않아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미루는 바람에 애를 태우고 있다. A씨는 "결국 연체금 수백만원을 자비로 메우느라 손해가 막심하다"며 "경기도 좋지 않은데 죽을 지경"이라고 털어놓았다.경찰서들이 거래하는 주유소의 기름값을 상습적으로 연체하고 있어 주유소 업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금 지급이 수개월씩 연체되기 일쑤지만 업자들은 상대가 경찰이어서 제대로 독촉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 시내 경찰서는 통상 경찰서 관할구역내 2∼4군데의 주유소와 일반 차량보다 5% 정도 할인된 가격에 유류공급 계약을 맺고 있다. 그러나 순찰차 1대가 하루에 쓸 수 있는 양은 18.9ℓ인데 반해 평균 25ℓ를 소비해 책정된 예산이 턱없이 모자란 상태. 각 경찰서마다 3개월에 한 번씩 결제를 하지만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수억원까지 외상은 쌓여가고 있다. 서울 B경찰서의 경우 다른 2곳의 주유소에도 1억원가량의 외상이 있고, 서울 C경찰서도 수천만원이 밀려 있다.
C경찰서 관계자는 "순찰지구대 형식으로 바뀌면서 차량 운행거리가 늘어났지만 예산은 늘지 않아 지난해 9월에 밀린 대금을 결제해준 뒤 아직 돈을 주지 못했다"며 "전국적으로 모든 경찰서가 주유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난리"라고 전했다. D주유소 관계자는 "주유대금을 제때 받지 못해 부담이 크지만 계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심하게 독촉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기획예산처가 올해도 경찰의 차량유지 관련 예산을 넉넉하게 배정하지 않아 주유소 업자들의 연체 고통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점. 경찰청은 순찰차 3,440대를 포함해 차량 1만1,580대의 유지비로 지난해보다 26억원 증액된 757억원을 확보했고 순찰차 1대가 하루에 쓸 수 있는 기름량도 20ℓ로 늘렸지만 아직도 일선의 수요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기획예산처에 예산 현실화를 요구했지만 들어주지 않는다"며 "다른 행정차량 유지비를 최대한 절약해 유류대금을 결제하고 있어도 외상은 계속 쌓이는 게 현실"이라고 걱정했다.
/정상원기자 orno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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