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안국동 참여연대 건물 2층 '투명사회팀' 사무실. 칸막이가 쳐진 7∼8평의 좁은 공간을 각종 자료 스크랩들이 벽처럼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는 이곳에서 한국 사회의 '부패지수'를 낮추기 위한 각고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재명(35) 팀장과 최한수(33) 이재근(30) 전진한(30) 간사 등 30대 초중반의 시민운동가 4명은 1980∼90년대 거리에서 '반독재'를 외치며 민주화를 위해 불태웠던 열정을 이젠 투명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반부패' 운동에 쏟고 있다.사정기구를 사정-반부패정책사업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은 지난해 3월 당시 진대제 삼성전자 사장이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되자 "정통부 장관으로서의 업무 수행과 정책 결정에 따라 자신이 보유한 삼성전자 주가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이 발생할 수 있다"며 광화문 정보통신부 건물 앞에서 주식 매각 및 스톡옵션의 양도를 촉구하는 35일간의 1인 시위를 벌였다.
주식 매각은 참여연대가 2002년 대선 당시 현대중공업 주식을 소유하고 있던 정몽준 후보에게 처음 제기했던 문제.
참여정부가 출범하자 투명사회팀은 정부기록보존소에 보관된 10년간의 공직자 재산변동 신고내역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해 고위 공직자들의 주식 보유 변화를 모니터링했다. 또 장·차관과 금융감독기관 관료, 국회 경제 분야 상임위원회 소속 국회의원들에게 지속적으로 이해충돌 문제를 제기, 재정위 소속 민주당 김효석 의원과 이정재 금감위원장이 주식 전량을 매각하도록 하는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재근 간사는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간의 이해충돌 가능성 문제를 국민들에게 '반부패' 문제로 인식시킨 성과가 있다"며 "진 장관은 끝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지 않았지만 결국 정책결정 과정에서 계속해서 공정성 시비가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고 말했다.
처음 열린 감사원장, 국가정보원장에 대한 공개 인사청문회를 전후한 시점에서도 참여연대는 권력기관의 구조개혁 과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어내는데 성공했다. 최한수 간사는 "사정·정보 기구에 대한 첫 인사 청문회여서 개혁 과제들을 공론화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여야 의원들의 색깔 공세로 끝나 아쉬웠다"며 "각 기관장에 대해 취임 1주년을 기해 구조 개혁 현안 등을 다시 모니터링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 캐비닛을 열어라-정보공개사업
투명사회팀 전진한 간사는 지난 해 7월부터 2개월 동안 공공기관의 기록물 실태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이 과정에서 각 부처별로 폐기된 기록물 목록을 청구해 행정자치부의 '삼풍 관련자료', 재정경제부의 '한보사태 관련자료' 등 주요 문서들이 작성된 지 10년도 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록물 관리 실태 조사는 참여연대가 그 동안 꾸준히 벌여왔던 회의록 작성운동 등 정보공개운동의 연장선 상에서 이뤄진 것. 기록하지 않고 마구 버리기만 하면서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 요구에 대해 사사건건 발뺌만 하는 정부기관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말에는 정보공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참여연대 등 51개 단체가 국회의원 및 행자부 담당자와의 면담, 개정의견서 제출, 정보공개법 이행도 조사 등을 통해 꾸준히 정부를 압박한 결과였다. 전 간사는 "국정원의 주요문서 목록이 공개되고 비공개 정보 세부기준을 심사하는 대통령 직속의 정보공개위원회가 신설되는 등 앞으로 정보공개에 있어 혁신적인 변화가 있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민제보와 함께-공익제보지원사업
부패는 외부의 노력에 의해 드러나기도 하지만 조직 내부에서 흘러나오기도 한다.
참여연대는 각 기관 내부의 양심적 제보자들을 보호하고 소송을 대리하며 이들이 제공한 '건수'를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지난달 서울지검이 군법무관 출신 변호사들로부터 금품을 받고 수임 특혜를 준 혐의로 김창해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예비역 준장)을 구속기소한 것은 민간단체가 제보해 군 최고사법기관의 수장을 사법처리하게 한 상징적 사건이다.
참여연대는 2002년 9월 국정감사에서 일부 드러난 비리 혐의를 단서로 제보자를 추적해 사건을 군 검찰에 고발했고, 군 검찰이 직속 상관을 구속기소하지 못한 채 무혐의 처리하자 다시 군 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하고 총리실과 감사원이 직접 조사·감사하도록 만들었다. 결국 국방부가 김 전 준장을 보직해임한 것이 지난 해 7월. '제 식구 감싸기' 식의 군 사법부의 구조적 문제점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 참여연대의 전문가집단 "맑은사회만들기 본부"
참여연대 투명사회팀의 반부패 운동의 특징은 대안 없는 비판이 아니라 이론적 분석을 토대로 한 선진적인 의제 설정과 법률적 지식을 토대로 실질적 제도 개혁에 앞장선다는 것이다. 투명사회팀이 운동가 중심의 실무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면 '맑은사회만들기 본부'는 교수·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으로 서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맑은사회만들기 본부는 정책사업단과 정보공개사업단, 공익제보지원단 3개의 사업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각각 사업단장과 함께 3∼6명의 실행위원들이 포진하고 있다.
장·차관과 고위 공직자, 국회의원들의 주식매각을 이끌어 낸 '이해충돌'이라는 의제 설정은 정책사업단의 윤태범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 교수의 아이디어. 윤 교수는 기고 및 각종 토론회 참석을 통해 사인(私人)으로서의 공무원의 이익과 그가 대리하고 있는 일반 국민의 이익이 충돌해서는 안된다며 '백지위임신탁'(Blind Trust)이라는 대안을 제시했다.
정책사업단에는 강성남 방통대 행정학과 교수를 단장으로, 하태권 서울산업대 행정학과 교수, 김병섭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조은경 반부패행정연구소 선임연구원, 백종섭 대전대 행정학과 교수 등이 실행위원으로 있다.
이광수 변호사를 단장으로 하승수 변호사, 경건 서울시립대 법학교수, 장유식 변호사 등이 실행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보공개사업단은 판공비 정보 공개 등 각종 정보공개청구소송을 대리하고 지난달 국회를 통과한 정보공개법 개정안의 초안을 만드는 등 법률 자문을 담당하고 있다. 김창준 변호사를 단장으로 이상수 반부패행정시스템연구소 선임연구원, 박흥식 중앙대 공공정책학부 교수 등으로 구성된 공익제보지원단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무료법률지원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박은형기자
● 시민단체의 반부패운동
과거 흥사단과 초기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전통적인 시민단체들이 부정부패의 추방을 단체의 정통성을 이루는 근간으로 삼은 이후 최근까지 시민단체들의 반부패운동은 예산감시 및 모니터링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2002년 행자부 산하의 국가기관인 부패방지위원회가 설립되고 '반부패 운동'이 제도화된 공간으로 흡수되면서 '운동'으로서의 새로운 '반부패' 활동 의제의 발굴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밑빠진 독상' '투명상' 등을 제정하고 부패방지 제도화를 추진하는 등 새로운 방식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고 있다.
'함께하는 시민운동'은 지난 2000년 8월부터 매달 최악의 예산낭비 사례를 선정해 '밑빠진 독상'을 수상하고 있다. 지난 달 28번째 밑빠진 독상으로 3개 정당의 국고 보조금이 선정됐고 그 동안 농림부의 새만금 사업, 서울시의 '월드컵 천년의 문 건립계획' 등이 선정됐다. 예산낭비 사례를 선정해 정부 예산이 어떻게 잘못 쓰이고 있는가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예산감시운동의 일환인 것이다.
반면 흥사단 투명사회운동본부는 지난달 제1회 투명상을 제정해 시상했다. 수상자는 송파구 석촌동의 불광사. 강남 요지의 이 대형 사찰은 회계감사의무가 없는 종교단체임에도 불구하고 5년간 회계법인 등으로부터 사찰재정에 대한 회계감사를 받고 최근 그 내역을 공개했다.
한편 1999년 시민사회단체들이 부패방지법 제정을 위해 연대, 결성한 반부패국민연대는 부패방지법이 제정되고 부패방지위원회가 설립된 이후에는 국제투명성기구(IT)의 한국본부로 인준을 받아 매년 10월 부패지수를 발표하고 있다. 지난 해에는 한국이 2002년에 비해 순위가 10위가 떨어져 133개 국가 중 50위를 차지해 충격을 주기도 했다. 경실련 부패추방운동본부도 2000년 처음으로 한국 실정에 맞게 지자체 공무원들과 민원인들이 피부로 느끼는 한국판 부패지수를 발표한 바 있다.
공익제보자 1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이문옥 전 감사관이 현재 본부장을 맡고 있는 민주노동당 부패추방운동본부는 지난해 10월 청와대가 직원 498명에게 휴가비 명목으로 최고 100만원 등 모두 3억여원을 지급한 것에 대해 국민감사를 청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예산 편성지침에 있지도 않은 휴가비를 지급하기 위해 급여를 과다 책정했다며 시민 604명의 서명을 받아 국민감사를 청구했었다.
/박은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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