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면 전국 산하는 자동차로 넘실댄다. 귀성 교통대란은 더 이상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귀성길, 여행길을 나설 때는 설레는 마음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짜증이 스트레스 단계를 넘어 체념상태에 접어든다. 그저 감내할 뿐이다. 그래서 이젠 '피하지 못할 바에는 즐기라'고 한다. 어떻게? 우회도로를 선택하는 것이다.새 고속도로가 늘어나고 있고, 잘 닦인 국도도 많아 노선 선택만 잘 한다면 피곤을 덜면서 즐기는 여행이 될 수 있다. 우회도로로 선택한 길 도중에 괜찮은 관광명소까지 둘러볼 수 있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귀성, 귀경길에 웬 관광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설연휴(21∼23일)에 주5일제 근무시대의 덕분으로 토(24일), 일요일(25일)까지 합쳐 5일까지의 휴가를 보낼 수 있는 직장이 많아졌다. 그야말로 황금연휴이고 어느 때보다 시간적 여유가 많다. 그런 여유가 없다면 우회도로를 선택하면서 벌게 된 시간만이라도 투자하면 어떨까. 고속도로별 우회도로와 인근에 가 볼만한 관광지 몇 곳을 소개한다.
경부고속도로
가장 많은 여행객이 이용하는 경부고속도로는 대부분의 지역이 체증구간으로 분류되지만 특히 편도 4차로에서 3차로로 좁아지는 천안-남이분기점 구간이 최악의 구간이다. 천안이나 목천IC에서 나와 인근 관광지를 둘러본 뒤 1번 국도를 따라 조치원까지 내려가 591, 40번 지방도를 지나 청원IC로 다시 진입하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귀경길은 역순으로 이용한다.
이 일대에는 민족문화유산들이 많아 어린 자녀를 둔 가족이라면 교육과 휴식을 겸할 수 있는 코스로 추천할 만하다. 목천IC를 나와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은 독립기념관(041-560-0114)이다. 충남 천안시 목천읍 남화리일대 120만평의 부지에 1987년 8월 15일 건립됐다. 우리 민족의 국난극복사와 국가발전사와 관련된 자료를 전시해놓은 곳이다. 민족전통관, 근대민족운동관, 일제침략관 등 7개 전시관, 조국강산의 사계절과 문화유산을 360도 대형스크린에 상영하는 원형극장, 겨레의 집, 상징조형물 등 건물만 68동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다. 1,400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을 갖추고 있다. 조경이 잘 꾸며져 관람과 휴식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성인 2,000원, 청소년(만11∼18세) 1,100원, 어린이 700원.
천안IC에서 나와 628번과 624번 지방도를 갈아타면 현충사(041-544-2161)를 만난다. 충남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에 위치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사당이다. 너무도 유명한 난중일기(국보 76호)가 보관돼 있고, 이순신 장군이 사용하던 장검과 요대 등은 보물 326호로 지정돼 있다. 성인 500원, 청소년 300원. 이 곳에서 서북쪽으로 9㎞떨어진 음봉면 삼거리에 이순신 장군의 묘소도 있다.
중부고속도로
일죽IC∼진천IC 구간에서 잦은 체증이 일어난다. 이 때 일죽IC에서 나와 17번 국도를 따라 진천 방향으로 가면 한결 낫다. 이 구간을 지나는 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인 농다리를 볼 수 있다. 충남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굴티마을앞 세금천에 놓인 다리다.
농다리는 중부고속도로 진천IC 일대를 지나면 큰 입간판이 서 있어 평소 한번쯤은 눈길을 줬던 곳이다. 이번 기회에 마음먹고 다녀오는 것도 괜찮을 듯. 진천IC에서 나와 21번 국도를 타고 진천시내까지 온 뒤 성석사거리에서 좌회전, 지석마을앞에서 우회전하면 만날 수 있다. 모래와 자갈이 섞인 사력암질의 무늬돌을 물고기비늘처럼 쌓아 25개의 교각을 만들고, 여기에 긴 판석을 올려 만든 다리다. 유사한 예가 없는 독특한 구조다. 고려초기에 건설됐다는 설이 있으나 정확하지 않다. 아무리 비가 와도 유실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다. 입장료 무료. 주변에 차량 50대분 여유의 주차장이 있다.
서해안고속도로
서해안고속도로는 가장 극심한 교통체증을 일으키는 곳 중 하나. 특히 매송-당진 구간의 정체가 가장 심하다. 이 경우 영동고속도로 서안산IC에서 39번 국도를 이용, 매송, 비봉을 지나 아산까지 온 뒤 34번 국도를 따라 당진IC로 진입하는 방법을 고려해볼 만하다. 이 때 인근 현충사나 삽교호유원지를 둘러보면 좋다.
여행 마지막날이라면 인근 아산온천이나 온양, 도고온천에서 피로를 풀고 올라가는 것도 권할 만하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전국적으로 고속도로가 사통팔달로 이어지면서 이제는 고속도로 자체가 우회도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대전-진주 고속도로가 대표적이다. 이 도로가 생기고 나서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데 경부고속도로를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까지 간 뒤 대전-진주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진주에서 다시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면 거리는 비슷하지만 막힘이 없다.
명절 연휴에는 대구, 경북지역 주민들도 이 도로를 우회도로로 활용한다. 무주IC에서 나와 30번 국도를 타고 성주를 지나면 경북지역과 연결된다. 이 길로 가다보면 나제통문(羅濟通門)을 만난다. 전북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에 있다. 신라와 백제를 잇는 경계관문이었다. 바위에 구멍을 내 높이 3m 폭 10m의 터널을 만들었다. 자가용 2대의 교행이 가능할 정도이다. 이 문을 사이에 두고 동쪽은 신라, 서쪽은 백제에 속했다.
지금은 마을 전체가 설천면 소천리에 속하지만 두 마을의 풍습은 물론, 언어는 지금도 확연히 다르다. 덕유산 국립공원의 시작점이다.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1경에 속할 정도로 풍광도 빼어나다. 인근에 무주리조트가 있어 가족단위 나들이객이라면 이 곳과 연계, 한번쯤 둘러볼만하다.
영동고속도로
귀성인파에 스키장을 찾는 관광객까지 합쳐져 극심한 체증을 빚는 곳이다. 국도를 활용하는 방법을 찾아본다. 먼저 서울에서 6번 국도를 타고 양평을 경유, 중앙고속도로 횡성IC에서 진입한 뒤 제천방향으로 내려오다 만종IC에서 영동고속도로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양평에서 용문터널을 지난 뒤 우회전하면 용문사(031-773-0088)와 만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가 있는 절이다. 수령이 1,100년이나 됐다. 높이 60m에 둘레만도 14m다. 신라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고 금강산으로 들어가던 중 이 곳에 심은 것이라는 설도 있고,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지니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았더니 뿌리를 내렸다는 설도 있지만 모두 확실치 않다.
또 다른 우회도로는 서울에서 3번 국도를 타고 여주까지 온 뒤 42번 국도를 이용, 문막IC에서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것. 도중에 신륵사(031-885-2505), 목아박물관(885-9952∼4), 세종대왕릉(885-3123) 등 볼거리들이 많다. 눈이 즐거운 여행이다.
중앙고속도로
대구 및 경북내륙권으로 가는 사람들은 경부고속도로보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 경부 혹은 중부고속도로에서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타거나 6번, 42번 국도를 이용, 영동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만종IC에서 중앙고속도로를 타면 귀성전쟁을 다소나마 비켜날 수 있다.
중앙고속도로 인근에는 도담삼봉, 안동하회마을 등 빼어난 볼거리와 문화유산이 즐비하니 약간의 시간을 투자하면 미처 생각치 못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북단양IC에서 나와 5번 국도를 타고 남쪽으로 10㎞ 가량 가다 보면 남한강 상류에 우뚝선 3개의 기암 도담삼봉(043-422-5593)을 만난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이 이 곳의 풍광에 반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고 지었다고 한다. 단양8경중 제1경에 속한다. 충주댐 건설로 3분의 1가량이 물에 잠겼지만 지금도 늠름한 모습은 변함이 없다. 시간이 나면 이 곳에서 배를 타고 석문까지 다녀오는 것도 좋다. 성인 5,000원, 어린이 2,500원.
서안동IC로 빠져나와 34번 국도와 916번 지방도를 갈아 타면 우리나라 대표적 민속마을인 하회마을(054-854-3669)을 볼 수 있다.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 속한다. 풍천 류씨의 집성촌으로 조선 선조때 재상을 지낸 서애 류성룡선생이 이 곳에서 태어났다. 낙동강물이 S자로 굽이치면서 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마을 모양이 태극형을 띠고 있는 독특한 지형구조를 하고 있다. 강(河)이 우회(回)하며 굽어친다고 해서 하회마을이다. 흔히 하회탈춤으로 알려진 하회별신굿탈놀이로 유명한 곳이다. 초가집부터 대감집까지 전통적인 마을형태가 고스란히 보존돼있어 적지않은 관광객이 몰리는 곳이기도 하다. 성인 1,500원, 청소년 750원, 어린이 600원.
/한창만기자 cmhan@hk.co.kr
■먹거리도 푸짐해요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맛있는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대감이다. 길이 막힐 때 고속도로 인근의 유명 음식점을 찾아 먹거리를 즐기며 여유를 갖는 것은 여행의 재미를 배가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우회도로 주변에서 관광과 식도락을 겸할 수 있는 음식점 몇 곳을 소개한다.
#안동헛제사밥
안동에 가면 명절 제사때나 먹을 수 있는 제삿밥을 아예 헛제삿밥이라는 이름으로 내놓는 곳이 많다. 헛제삿밥은 안동지방 유생들이 배가 출출하고 쌀밥이 먹고 싶을 때 제사실습을 명분으로 지어먹던 데서 유래한 것. 염불은 관심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큰 사기그릇에 무, 고사리, 시금치나물 등을 넣고 고추장 대신 간장에 비벼먹기 때문에 일반 비빔밥과는 달리 맛이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안동하회마을 근처에 헛제삿밥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많다. 1인분 5,000원. 목석원가든 054-853-5332, 옥류정 854-8844.
#아우내순대
경부고속도로 목천IC에서 나와 병천 방향으로 가다 보면 일제시대 유관순열사가 만세운동을 했다는 아우내장터를 만난다. 이 곳에는 10여년전부터 아우내순대 혹은 병천순대라는 이름으로 20여개의 순대국밥 전문점들이 성업중이다. 돼지 소창에 찹쌀, 들깨, 야채, 당면 등을 버무려 넣은 뒤 마늘, 부추, 생강 등 갖은 양념을 곁들여 맛이 일품이다. 가격도 싸다. 국밥 1인분에 3,500원, 순대수육이 5,000원선. 아우내순대 041-564-1242, 돼지네순대 564-1077, 고향순대 564-1559.
#장어구이
충남 아산시 인주면 삽교천방조제 인근에는 10여개의 장어집이 들어서 있다. 이 일대 장어집은 토속적이면서 푸짐한 상차림으로 유명하다. 장어를 뒤집어가며 간장소스와 고추장양념을 발라낸 맛이 독특하다. 2∼3인이 먹을 수 있는 1㎏에 4만원선. 옛날돌집 041-533-2241, 꽃동네원조장어 533-2561, 연춘식당 545-2866.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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