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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고3이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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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에세이/고3이 된다는 것

입력
2004.0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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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깨어보니 새벽이었다. 무언가 악몽을 꾸었는데 뭐였더라, 나를 몸서리치게 만드는 단어는? 맞아 '고3'이지. 몇 개월이 지나면 고3이 된다는 사실이 꿈 속에서도 내 무의식을 놀래킨 모양이다.꿈 많은 이팔청춘의 여고생인데 고3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이렇게 내 가슴에는 찬바람이 인다. 대한민국 청소년 대부분이 거치는 과정, 그렇지만 나는 고3이 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다. 중학 입학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대의 끝자락이다. 돌이켜 보면 공부를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책에서 손을 떼도 마음 한 구석은 걱정으로 가득 차 있다.

벌써부터 부모님의 눈치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오늘만 해도 어두컴컴한 독서실에 앉아 한참을 영어와 씨름하다 집에 와 조금 쉬려 했더니 어머니는 "너, 내일 모레면 고3이 되는 애가…"하고 눈치를 주신다. 정작 듣고 싶은 말은 따로 있는데….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거라"라는 말을 듣는다면 조금은 긴장이 풀리지 않을까.

지난해 고3 언니들이 입시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을 지켜봤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아예 꽁지머리를 하고 다니는 언니들은 사명감과 절박감으로 가득찬 표정이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와서 1년 동안 오직 하나의 목표에 매달릴 수 있었던 걸까. 대학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데…. 책상 양 옆으로 수북이 쌓인 문제집들, 그리고 쉴 틈 없이 채워진 방학 계획표들, 이것이 내 생활의 전부다. 7차 교과 개편의 첫 세대라 불리한 점이 많을 텐데….

이런저런 고민에 인상이 찌푸려지다가 나는 갑자기 즐거워졌다. 내가 대학생이 돼서 남자 친구와 데이트도 하고 강의실에서 노트 필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한 것이다. 아, 대학생이 된다는 사실만 생각하면 힘이 솟는다.

고3이 피할 수 없는 것이라면 담담하게 받아들여야겠다. 인내하고 자기를 이기는 법을 배우련다. 그래, 처음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잖아? 10대의 마지막 해를 이렇게 우울한 몽상으로 보낼 수는 없지. 이 찬바람만큼이나 썰렁한 고3이라는 괴물과 맞서 싸워 따뜻한 봄을 맞이할 것이다. 그래, 난 대한민국 고3이야. 내가 누구더냐, 86년생 호랑이가 아니냐. 파이팅! /skkbe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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