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재즈 연주자가 내게 말하기를, 신문마다 공연정보란을 다 뒤져봐도 재즈라는 카테고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무관심한 부분이었는데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클래식이나 국악은 있어도 재즈는 없다. 외국의 경우 행사의 규모와 상관없이 다양한 프로그램을 찾아내서 꼼꼼히 싣는 편이다.그런 배려는 담당 기자의 노력을 엿보게 해주고 독자에게 실제로 유익하다. 재즈가 당당히 하나의 항목을 차지한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작은 클럽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매번 다룰 수 없다면 적어도 재즈공연은 '재즈'라는 항목을 따로 만들어서 소개하면 좋겠다. 음악적으로 가장 개성이 뚜렷한 재즈가 어떻게 가요나 팝처럼 그저 대중음악으로 치부될 수 있는가.
비슷한 이유로 새해를 맞아 새로 창간하는 잡지 몇 군데서 원고부탁을 받았으나 고민 끝에 정중히 거절하고 말았다. 대부분 신개념의 문화매거진이라고는 하지만 그 형식은 달라보이지 않았다. 음악 코너에 박스 한 칸 치고 쓰는 글이라면 잡지사의 담당 기자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대로 한 분야에서 전문가의 이름을 필요로 했다면 '쉽고 재미있고 재즈 상식을 줄 수 있는...' 따위의 주문으로 욕심만을 앞세워서는 안 될 일이다. 턱없이 작은 네모칸에 그 모든 것을 말하라는 것은 재즈 전문가가 아니라 소설가나 시인에게 맡겨야 할 일이다.
요컨대 재즈를 다루는 것이 따로 코너를 마련해 다루기보다 매체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발상에서 비롯한 것으로, 재즈를 아직 깍두기 문화로 보는 시각이 안타깝다. 구색을 맞추는 일과 구석을 마련하는 것은 분명히 차이가 있다.
남 무 성 재즈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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