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만이 고유의 역사를 만든다.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무엇을 만들어가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는 45년 전 초보적 수치분석(Numerical analysis)을 공부하면서 그것이 앞으로 컴퓨터에 의한 제3의 산업혁명의 핵심요소가 될 것이라는 감을 잡을 수 있었다.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정치사회의 밑받침이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사이버공간의 익명성,실시간 소통,디지털 다원주의가 인간욕구의 보편화를 촉진하여 다이나믹 사회를 구축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위압적인 군사권위주의 전통의 기득권집단 대신 비주류, 비공식, 보통사람이 역사를 만들어 엘리트 순환을 가속시킬 것은 더 더욱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지난날에는 오프라인 정보를 장악하는 기득보수 엘리트층 이외의 대중은 자유로운 정보소통도, 보편적 정보유통을 통한 정치사회적 자각도, 권력에 대항하기 위한 일치된 단결행동도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자유롭고 거래비용이 거의 없는 사이버공간이 대중의 정치의식, 특히 선거에 대한 관심과 정치참여를 촉진한다. 인터넷은 현대 민주주의의 한계,대중의 정치외면, 그리고 돈의 위력을 한꺼번에 무너뜨린다.
J. 슘페터의 '균형민주주의'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는 정치적 재화의 공급과 수요를 균형시키는 정치재 시장메커니즘이다. 유권자는 소비자이고 정치가는 기업가다. 유권자와 정치가는 그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경쟁한다. 정치권력의 획득은 정치엘리트가 국민의 정치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정치재의 질을 얼마나 높이고 효율적으로 공급하느냐에 달려있다. 정치재가 사이버 정보망에서 자유롭고 폭넓게 교류되어 정치소비자인 국민의 정치인식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역사적 경험은,유권자인 소비자가 질 높은 정치재의 메뉴를 보고 정당 후보를 지도자로 선택해도 그가 일단 권좌에 앉게 되면 대중이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결국 지도자에게 시간적 제약만 가해질 뿐 유권자는 투표와 동시에 피지배자 지위에 머물게 된다. 따라서 선택과정에서 합리성을 추구하는 수 밖에 없다.
정치권은 보수적이든, 개혁적이든 그들이 제공할 수 있는 정치재로 실현하고자 하는 정치 경제 사회의 이상적 틀과 공급메뉴의 현실성, 다양성, 우선순위 그리고 시행의 가능성, 일관성 등을 명시하여야 한다. 결코 추상적 선동 수준으로는 차별성을 보여줄 수 없고 소비자인 국민의 선택범위를 넓힐 수도 없다. 우리의 경우 불행하게도 이런 조건을 갖춘 정당이 없다.
그러나 이제 차떼기,책떼기 등이 웅변하듯 갈 데까지 간 정치권의 부패, 부정, 무능이 역설적으로 정치권의 물갈이를 일으켜 새 엘리트의 출현을 기대케 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 정당의 구성 등을 볼 때 획기적인 정치재 메뉴의 제공 없이는 국민의 선택이 여전히 제약될 수밖에 없다.
자유분방하고 창의성은 있으나 세련되지 못한 신세대 엘리트의 순환은 실패한 참여정부 1년의 성과로 보아 오히려 불확실성과 큰 위험을 동반할 수 있다. 새 엘리트의 경륜부족과 다이나믹 사회에서 야기되는 수 많은 갈등의 조정력 상실이 혼돈과 좌절을 야기할 수 있다. 그 결과 현실에 대한 안정감도 없고 장래에 대한 기대도 잃어 새로운 혼돈과 퇴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정보화 시대의 자폐증 환자쯤으로 치부되기에는 새 엘리트의 지배가 너무 불안해 보인다.
우리의 장래는 정치엘리트가 국민요구와 균형을 어떻게 이루는 가에 달려있다. 우리가 만든 정보화 사회 그리고 균형민주주의의 장래가 아직은 어디로 갈지 알기 어렵다. 네티즌 감성에 호소하는 수준만으로는 진보적 균형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어렵다. 정치권의 현실인식과 국민의 정치의식 자각 그리고 지혜로운 선택을 기대한다.
전 철 환 충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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