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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얼굴/피란시절 윤중달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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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은 얼굴/피란시절 윤중달선생님

입력
2004.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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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세상과 이별을 하기 전에 꼭 만나고 싶은 분이 있습니다. 1952년 부산 피란 시절에 저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던 윤중달 선생님, 지금 어디에 계신지요.한국전쟁이 터지자 저는 고향인 함경남도 북청에서 목숨을 걸고 피란 길에 올라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낯설고 물설은 타향에서 윤 선생님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저는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부산의 여기저기를 헤매다 자리를 잡은 곳이 수정동 대지공원의 어느 천막이었습니다. 당시 해군본부에서 무관으로 근무하던 선생님은 생면부지의 저를 우연히 만나 먹을 것, 입을 것을 수시로 갖다 주었지요. 훤칠한 키에 말끔한 해군복 차림의 선생님이 건네주는 도시락에는 군침을 돌게 만드는 흰 쌀밥과 김치가 가득 담겨 있었지요.

윤 선생님은 일제 강점기 때 경북 대구에 살다가 함경남도 흥남에 정착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군 장교로 입대해 부산까지 내려온 것이지요.

그런데 수정공원 일대에 큰 화재가 발생해 저의 거처가 완전히 소실됐습니다. 이후 제가 부산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하면서 선생님과의 연락도 끊기게 됐지요.

저는 7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와 자영업을 하다가 지금은 은퇴했습니다.

몇 년 전 경찰청에 문의했더니 선생님에 관련된 기록이 없더군요. 선생님은 지금쯤 연세가 76세 가량 됐을 겁니다. 윤희정이라는 여동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저도 벌써 나이가 72세가 됐습니다. 제가 오늘날까지 건강하게 인생을 살도록 도와주신 선생님께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를 꼭 하고 싶습니다.

얼마 전에는 고향인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왔는데, 북한 사람들이 아직도 굶주림에 허덕이는 것을 보니 가슴이 아프더군요. 윤 선생님, 살아 계시거든 꼭 연락주세요.

/김상훈·4287 Callan Blvd Daly City, CA 94015-4433, 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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