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 지음 푸른역사 발행·1만4,000원
1971년 충남 공주에서 배수로 공사를 하던 인부의 곡괭이에 무언가 '턱' 하고 걸렸다. 그 자리를 파헤쳐 나온 것은 백제시대 벽돌무덤. 묻힌 그대로 모두 108종 2,096점의 유물이 고스란히 빛을 보게 되었고 이중 12점이 국보로 지정됐다. 국내 최대의 고고학 성과 중 하나로 꼽히는 무령왕릉의 발굴이다.
하지만 이 유적은 금관과 금귀고리, 용봉환두대도 때문에 가치를 인정 받은 것이 아니다. 백제 25대 왕의 무덤을 알려주는 '백제 사마왕(斯麻王)'이라고 적힌 네모나고 편평한 돌판 하나 때문에 가치가 빛난 것이다. 명문(銘文), 지석(誌石), 비석(碑石), 목간(木簡). 고고학 발굴에서 금은 유물이나 장식물, 벽화보다 중요한 것은 유물을 설명하는 글이 적힌 이런 금석문이다.
이 책은 고대 유적 발굴의 성과를 한층 높이는 것은 물론 정확한 역사 재구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18가지 금석문 이야기를 담고 있다. 멀리 청동기 시대 암각화부터 9세기 말 통일신라의 토지 문서까지 금석문을 통한 당시 사회상의 재구성, 금석문 해석과 관련된 논란 등을 흥미진진하게 다루었다.
아무래도 일반의 관심을 끄는 것은 금석문 해석으로 생기는 역사 논란이다. 대표적인 것이 동북아시아의 로제타석이라고 불리는 광개토대왕비문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중국 학자의 논쟁. 일본은 만주지배시절 군이 주도한 광개토대왕비 조사와 탁본 자료를 통해 '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羅以爲臣民' 대목을 '일본서기(日本書紀)'에 나타난 임나가야 지배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했지만 1970년대 재일동포 사학자 이진희씨가 위조설을 주장해 대단한 화제가 됐다. 보이지 않는 글자가 있는데다 '海'자의 경우 위조됐을 가능성도 상당해 아직도 명쾌하게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백제의 왕세자가 일왕에게 주었다는 칠지도(七支刀)도 비슷한 논란의 대상이다.
북한 남포직할시 강서구역에 있는 덕흥리 벽화고분의 묵서명 155자 때문에 고구려가 자주적인 역사를 꾸려왔다(북한), 고구려는 중국 영토 안에 있던 변방 정권이다(중국), 고구려는 동북아시아 북방의 별개의 역사이다(일본), 만주와 한반도를 포괄하는 역사이다(한국)는 갖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금석문의 중요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이밖에도 신라 왕족의 근친 로맨스를 보여주는 울주 천전리 각석, 무령왕릉 출토 지석, 영일 냉수리비와 울진 봉평비, 충북 중원에 남아 있는 남한 유일의 고구려비석인 중원 고구려비, 진흥왕순수비, 신라 목간, 발해 정혜·정효공주 묘지 이야기가 함께 실려있다. 고대사를 둘러싸고 한·중 역사전쟁까지 벌어지는 상황이어서 더욱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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