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주머니가 가벼운 시인 묵객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 왔던 서울 인사동의 카페 '시인학교'가 경영난으로 폐쇄 위기에 처했다. 시인학교는 지난해 여름 내부수리를 위해 4,000만원을 투자한 뒤 11달째 월세를 내지 못해 지난해 말 올 설날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건물주의 최후 통첩을 받았다. 주인 정동용씨는 "보증금은 다섯 배 이상 오르고 월세도 두 배 이상 올랐지만 딱히 옮길 만한 적당한 곳도 없어 그저 버티고 있었다"며 "우리가 떠나면 건물은 상업용으로 리모델링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1984년 '두레시' 동인을 이끌던 시인 정태승씨에 의해 처음 문을 연 시인학교는 88년 시인 정동용씨가 인수해 현재까지 운영해왔다. 97년에도 경영난으로 경기 일산 백마역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가 인사동으로 다시 복귀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특히 정씨는 "올 3월7일 개교 20주년 행사를 맞아 기념책자를 준비하기 위해 지인들로부터 글을 받고 있었다"며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그동안 문학동네에서는 "시인학교를 모르면 시인이 아니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로 시인 신경림씨, 소설가 현기영씨 등 원로급 문인을 비롯해 수많은 시인들이 출판기념회 및 시상식 뒤풀이 장소로 애용해 왔고 매주 일요일에는 시인 지망생들의 시낭송회가 열리기도 했다. 대관료가 없는 화가들을 위해 화랑처럼 공간을 제공하기도 해 명실상부한 예술인들의 사랑방 역할을 해 왔다.
97년 인사동 시인학교가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을 당시 인터넷에 만들어진 웹진 '시인학교'(www.poetschool.net)의 운영자인 시인 이진우씨는 "시인학교는 우리 문학사의 여러 장면들을 기억하고 있는 문학사적 공간"이라며 "다시 시인학교 살리기 운동을 벌여 추억의 공간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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