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카드 사태 해법을 둘러싸고 벼랑 끝 대치를 벌여온 정부와 국민은행의 기(氣) 싸움이 김정태(57) 국민은행장의 완승으로 끝났다.채권단의 무한책임론을 내세워 공동관리를 밀어붙이던 정부는 끝내 김정태 행장의 뚝심을 꺾지 못한 채 산업은행 단독관리를 받아 들이고 LG그룹에도 추가 책임을 요구하기로 했다.
김 행장은 5일부터 정부와 주채권은행의 '4개 은행 공동관리안'을 거부하면서 관치(官治)와 LG그룹의 도덕성을 공개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김 행장은 "정부는 이번 사태가 금융시스템 위기라고 하지만 동의하지 않는다"며 "정부의 주장대로 시스템 위기라면 채권단이 100% 책임지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반발했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론'을 내세우자 "LG카드는 7, 8일까지 (유동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협상이란 것은 막판 10분에 타결되는 것"이라며 버텼다.
'금융계열사 독립 선언' 이후 LG카드 사태에서 한발 빼고 있던 LG그룹에 대해서도 직격탄을 날렸다. "국내 굴지재벌이 사업에 성공하면 자기가 다 가지고, 실패하면 내다버리는 식으로 책임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LG그룹이 추가적으로 더 내놓아야 한다."
이에 비해 정부는 무소신의 어정쩡한 태도로 일관하다 결국 김 행장 요구를 전적으로 수용하면서 권위만 추락하게 됐다는 평이다. 정부는 당초 지난해 12월30일까지 국내 은행 중에서 LG카드 인수자가 나타날 것으로 확신, 이에 맞춰 정상화방안을 마련했으나 결국 불발로 끝났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해결사' 역할을 자처했다가 "현실상 불가능하다"며 발을 뺐고, LG그룹의 추가지원을 배제한 채 내놓은 공동관리 방안도 무산됐다.
금융계는 이번 일이 크게 보아서는 관치와 시장의 싸움에서 결국 시장의 힘이 이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민영화한 국민은행의 파워를 실감케 한 사건이라는 지적도 많다.
물론 김 행장의 행태를 시장을 볼모로 한 상업은행의 '제 몫 챙기기'로 평가절하하는 시각도 있다. 국책은행의 한 관계자는 "자칫 금융시장에 26조7,000억원의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LG카드 사태를, 관치에 맞선 시장논리만으로 그것도 벼랑 끝 전술로 해결하려 했다는 것은 결국 시장을 볼모로 한 자기 잇속 챙기기"라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도 이번 사건이 과거와 같은 관치적 행태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는 대목은 대부분 인정하는 분위기다.
/김관명기자kimkwmy@hk.co.kr
■ 최종합의 난항 안팎
LG그룹이 다시 카드사태에 발목을 잡혀 막대한 추가지원을 해야 할 입장이 됐다.
LG는 8일 강유식 (주)LG부회장 주재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정부와 LG카드 채권단이 최후통첩한 카드의 추가부실 부담요구에 대해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거부하다가 막판 수용하겠다는 구두의사를 밝혔다. 추가부담을 거부할 경우 LG카드를 부도처리할 수밖에 없다는 정부와 채권단의 강경한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그러나 양측은 지원방식에 대한 최종합의에는 실패, 9일 협상을 계속하기로 했다.
LG그룹은 LG카드에 대한 추가유동성 지원이 필요할 경우 채권단의 요구대로 지원액의 75%를 책임지겠다는 데는 동의했다. 그러나 무한 책임을 질 수는 없는 만큼 지원금액의 상한선을 정하자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5,000억원선을 제시했으나 LG측은 이보다 휠씬 적은 액수를 주장해 최종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동성 지원한도가 5,000억원으로 결정될 경우 LG그룹은 향후 추가 유동성 지원시 75%에 해당하는 3750억원까지, 산업은행이 나머지 1250억원 한도내에서 유동성을 제공해야 한다. LG는 당초 오너와 계열사들이 법적 책임을 넘어 충분한 책임을 다했다며 정부의 추가지원 요구에 완강히 저항했다. 카드의 유동성 위기가 표면화한 지난해말이후 카드 지분(23.84%) 증권지분(21.19%) 구 회장의 (주)LG지분 5.46% 담보 제공 카드 매출채권 10조원 담보제공 1조원 유동성 지원 등을 내놓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카드와 증권의 경영권을 채권단에 넘기면서, 금융업 포기라는 혹독한 자구노력을 했다는 점도 부각시켰다.
LG관계자는 협상 타결전까지 "카드의 추가부실 규모 추산이 어려운 상황에서, 향후 부실의 대부분을 떠안으라는 요구는 법적 책임을 넘어 사실상 무한책임을 지라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표시해왔다. 그러나 LG측은 정부와 채권단의 요구를 끝내 거부할 경우 LG카드의 부도가 불가피하고 이는 곧바로 대주주인 구본무 LG그룹 회장에게 돌아가게 돼 막판 입장선회를 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지원 상한액에 대해서는 정부와 현격한 입장차이를 보여 최종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의춘기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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