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얼마 못 가서 장사 그만둘 줄 알았더니 벌써 일년이 됐네! 축하해."딸 아이가 얼마 전 내게 목도리와 장갑을 주면서 던진 덕담이다. 딸은 돌아서서 눈물을 글썽였다. 그러고 보니 길거리 먹거리 장사를 시작한 게 어느새 일년을 넘어섰다.
나는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아쉬운 잠을 매정하게 물리치고 어둠이 아직 깔려있는 새벽길을 나선다. 차디찬 겨울 바람 때문에 귓불이 빨갛게 얼어 붙는다. 우아하고 품위 있게 세상을 살아야 할 중년의 나이. 그렇지만 세상 밑바닥에 내팽개쳐진 채 허덕대야 했다.
경험도 없이 덜컥 시작한 분식집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하기란 죽기보다 힘들었다. 적자 투성이 가게를 손 놓고 바라보기엔 현실은 너무 힘겹고 절실했다. 고3이 된 아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선 한푼이 아쉬웠다. 나는 아침 출근길에서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엔 누가 알아볼까 싶어 고개를 숙여야 했다. 동창, 친구, 이웃이 알아 보면 어쩌나 싶어 가슴을 졸였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딸이 발견하고 말았다. 딸은 마치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충격을 받았다.
"엄마, 어쩌다 이 지경이 됐어?" 젊은 날에 홀로되어 죽어라 일만하며 열심히 살았고, 오직 자식들 반듯하게 키워내겠다고 그토록 열심이었던 엄마가 왜 추운 겨울 바람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느냐며 울먹였다. "엄마, 내가 회사 일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할 테니까 그만 두세요."
많이 미안했었다. 나는 어설픈 동정심 때문에 보증을 섰다가 한 순간에 전재산을 날린 쓰라린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도 가족들에게 부끄럽고 미안했다. 내 힘으로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길거리에 나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거나 덥거나 나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다.
하루에 두시간 남짓 자면서 가게 운영과 새벽 장사를 동시에 해왔다. 그 생활도 벌써 일년. 딸은 이제 불평하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를 응원한다. 처음엔 창피스러워서 쳐다보지 못했던 손님들을 이제는 반갑게 맞이하는 노련함도 생겼다. 더러는 마음씨 착한 손님들도 만난다. "아주머니, 추우시죠?"하면서 1,000원 짜리 김밥을 사주기도 한다.
김밥을 서둘러 만들다 보니 어떤 날은 짜고 어떤 날은 싱겁다. 김밥 맛이 변화무쌍해서 날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래도 믿고 사주는 사람들이 있어 나는 행복하다.
/bon1809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