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전 1, 2, 3 항에서 금한 행위를 권유, 선동, 선전하거나 방송, 보도, 출판, 기타 방법으로 이를 타인에게 알리는 일체의 언동을 금한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법관의 영장 없이 체포, 구속, 압수, 수색하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이 경우에는 15년 이하의 자격정지를 병과할 수 있다; 이 조치에 위반한 자와 이 조치를 비방한 자는 비상군법회의에서 심판, 처단한다."1974년 1월8일 대통령 박정희가 선포한 긴급조치 1호의 내용이다. 박정희는 이 조치를 위반한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해 비상군법회의를 설치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 긴급조치2호도 이 날 함께 내렸다. 긴급조치 1호는 그 전 해인 1973년 말부터 통일당 최고위원 장준하를 중심으로 본격화한 개헌 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막기 위해 내려진 것이다. 당시의 이른바 유신헌법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을 크게 제한하고 박정희의 종신 집권을 사실상 보장하고 있었다. 긴급조치가 내려진 지 일주일 뒤에 개헌청원운동본부 관련자들이 검거됐고, 이 가운데 장준하와 백기완이 기소돼 비상군법회의에서 징역 15년씩을 선고 받았다.
뒤에 9호까지 내려진 다른 긴급조치들과 마찬가지로 긴급조치 1호 역시 어지간한 독재국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파쇼적 규율이었다. 법관의 영장 없이 민간인을 체포해 군법회의에서 재판하게 함으로써, 이 조치는 대한민국 전체가 병영이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드러냈다. 더구나 긴급조치 1호는 이 조치를 비판하는 사람을 바로 이 조치로 처벌하는 재귀적(再歸的) 희극성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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