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일(62·사진)씨가 여섯번째 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문이당 발행)을 냈다. 12년 만이다. "장편에 매달리느라 짧은 소설은 10년 가까이 손 놓았는데, 마땅한 글감을 잡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는 작가의 말이다.중편 세 편과 단편 두 편을 묶은 묵직한 소설집은 "엄혹했던 시대와 비인간화의 악조건 속에서 힘들게 삶을 붙잡아온 사람과 죽어간 사람의 이야기"다. 근작 '슬픈 시간의 기억'에서 실험적 문체를 선보인 작가의 새 소설집은 그의 주조인 객관적 사실주의 기법으로 돌아갔다. 장편 '아우라지 가는 길'(1996)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고, '김원일 소설'의 주류인 한국전쟁 이후의 힘겹고 피폐한 삶도 차분하게 묘사됐다.
표제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은 고아로 자라나 장애인을 가족으로 끌어안는 여자의 이야기다. 인터넷에서 부유한 장애인의 구혼광고를 본 화자가 지원서를 보내고 면접을 한 뒤 '시험에 통과해' 결혼식을 올린다. 홀로만 풍요로운 삶에 대한 반성으로 독거노인과 보육원생을 보살피고 장애아 복지시설을 짓기로 하는 화자의 얘기에서 고통과 아픔을 몸과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눈길을 느끼게 된다. '물방울 하나가 고요한 수면에 떨어지면 그 중량으로 파문이 겹으로 커지며 넓게 퍼지다가 스스로 넉넉한 물에 섞여 자취를 감춘다. 그 이치와 같이 베풂이나 선행, 우리네 삶 자체도 그런 물방울 하나이리라'는 화자의 말은 그대로 작가의 목소리로도 읽힌다. 그가 담담하게 전하는 것은 이 가파른 세상의 모서리를 둥글게 깎아내는 사랑의 힘이다.
김원일 소설의 가장 중요한 주제인 분단과 한국전쟁의 상처도 이번 창작집에서 치유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다. 중편 '손풍금'에서 간첩 동생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사는 박도수는 자식과 손자, 증손자들과 사돈 식구들까지 모인 생일잔치에서 행복했던 한때를 되살려낸다. 동생이 즐겨 켰던 손풍금을 손자가 연주하는 것을 보고, 죽을 때까지 묻어두겠다고 다짐했던 옛일을 떠올리고 그리움에 젖는다. 상처를 끌어안고 화해하기로 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마음가짐은 "문학의 사회적 책무가 물신주의 속물화로 치닫는 당대 현실과 맞서서 시대의 상처와 고통을 싸안고 고뇌해야 한다고 반성해 온" 작가의 치열한 고민과 성찰에서 가능한, 귀한 성과이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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