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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경제대국 브릭스]<5> 브라질-룰라의 경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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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경제대국 브릭스]<5> 브라질-룰라의 경제개혁

입력
200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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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발간된 호세 마우로 바스콘셀라스의 소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한 장면이다. 리우데자네이루 빈민가 소년 제제의 성장기를 그린 이 소설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그로부터 35년이 흐른 2003년 12월. 브라질 상파울루 중심가에서 외곽으로 빠지는 거리에서는 아직도 어렵지않게 '제제'를 발견할 수 있다. 신호대기를 받고 서 있는 차로 쏜살같이 달려온 이름 모를 제제가 내민 것은 땅콩. 얼굴이 비쩍 말라 눈이 더욱 커보이는 이 소년을 바라보며 택시운전사 파울로 베르나도(42)씨는 "대통령 룰라도 저들처럼 어린시절 거리에서 땅콩을 팔았다"고 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57). 손가락이 하나 잘린 공장 노동자에서 1억7,000만 브라질 국민의 대표로 변신한 룰라 대통령의 드라마틱한 인생역정은 사실 소설 속 제제의 삶과 놀랄 만큼 닮았다. 제제가 생활고로 시골에서 대도시 리우데자네이루로 올라온 것처럼 룰라도 먹고 살기 위해 상파울루로 왔고, 제제가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희망을 간직했던 것처럼 룰라도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의 꿈을 이뤘다.

베르나도씨의 소박한 분석. "브라질 국민이 외국 유학을 다녀온 엘리트 정치인이 아니라 초등학교 졸업이 정규교육의 전부인 룰라를 선택한 것은 변화를 바랬기 때문이다. 룰라가 새로운 브라질을 건설할 것이라고 믿는다."

골드만삭스의 장밋빛 전망대로 2050년 브라질이 독일, 프랑스 등을 밀어내고 세계 5위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다면, 그 기초를 닦을 사람은 바로 룰라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이제 막 집권 1년을 넘긴 룰라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룰라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환상이다. 좌파 기반으로 집권한 뒤 완전히 다른 정책을 펴고 있지만 경제가 나아지지 않았다." (대외무역정보청 사미르 키디 고문)는 잔뜩 날 선 목소리가 있는가 하면, "정책의 일관성을 갖고 더욱더 확실하게 성장 정책을 펴야 한다." (이투아텍 네베스 페르난도 부장)는 주문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룰라가 불안한 상황에서도 연착륙에 성공했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하는 듯 했다. 삼성전자 중남미총괄 최승우 상무의 평가. "취임 전에 국제통화기금(IMF)을 향해 채무불이행을 선언할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외국 자본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주가는 바닥을 쳤고 채권, 통화도 동반 하락했다. 하지만 룰라는 의외로 '우향우 정책'을 펴기 시작했고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반전됐다."

룰라가 취한 첫 조치는 IMF가 요구한 금리인상. 콜금리가 26%까지 치솟아 기업들이 아우성을 쳤지만 경제회생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인플레를 잡기 위해 확고하게 고금리 정책을 밀어 붙였다.

다음으로 손을 댄 것은 브라질 재정적자의 90%를 차지하는 과도한 공무원 연금의 개혁. 일반 노동자들의 10배 수준인 최대 1만 헤알(약 400만원)까지 지급하는 브라질 공무원 연금법은 과거 정권에서도 손대지 못했다.

룰라의 일관된 정책 집행이 효험을 보고 있는 것일까. 브라질 경제는 올 하반기 들어 긍정적 신호들을 쏟아내고 있다. 경상수지가 흑자로 돌아섰고, 외국인 직접투자(FDI)도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도 자국 통화인 헤알화 가치가 달러 당 3헤알 수준으로 안정되고 물가상승이 멈춘 것이 가장 큰 소득. 또 브라질 증시의 보베스파 지수는 1968년 증시개설이후 처음으로 2만선을 돌파했다.

브라질 내 외국인 투자자들은 나름대로 자신감을 찾은 룰라가 서서히 경기 부양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어 브라질 경제가 내년부터는 본격적인 회복세를 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 증거가 최근 잇따라 단행되고 있는 금리인하. 특히 최근 세제개혁, 기업규제 완화 등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살리기 위한 정책이 차례로 나오고 있어 움츠렸던 기업들의 투자심리도 살아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투자자문회사 프로스펙티바의 리카르도 세네 이사는 룰라의 행보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그 동안 브라질 경제의 최대 걸림돌은 정치체제의 불안이었다. 페르난도 엔리케 카르도수 전임 대통령은 집권 2기 초반 정치적 경쟁자였던 이타마르 프랑쿠 미나스레라이스 주지사가 중앙정부에 대해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는 바람에 파탄에 빠졌다. 좌파 기반을 갖고도 전임 우파 정권의 정책을 착실하게 계승한 룰라의 등장은 분명 브라질에서는 사상 초유의 실험이자 희망적인 조짐이다."

룰라가 진행하고 있는 경제 체제의 전반적인 제도개혁과 성장기반 확충은 당분간 흔들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국민들로부터 탄탄한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주차관리원 안토니오 브리토(48)씨는 "룰라는 노동자 출신으로 말만 앞세우는 사람이 아니다. 더구나 손가락이 하나가 없기 때문에 돈을 가로채고 싶어도 새기 때문에 돈 욕심도 별로 없을 것"이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들었다.

/상파울루=박천호기자 toto@hk.co.kr

■ 룰라와 盧대통령

올해로 집권 2년째를 맞은 노무현 대통령과 브라질의 룰라 대통령은 정치적 이력과 지지기반이 비슷한 정치지도자라는 점에서 취임 직후부터 국제사회에서 곧잘 비교대상이 됐다.

우선 노 대통령과 룰라 대통령은 모두 엘리트 코스를 밟지 않은 비주류 출신으로 서민층을 지지기반으로 삼아 '역전 승부'를 통해 집권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두 사람 모두 한동안 노동운동에 몸을 담았고, 대미관계 등에서 자주적 입장을 강조해온 것도 닮은 꼴. 또 대화와 협상을 중시해 국가적으로 긴급한 현안이 발생했을 경우 대통령이 직접 중재자로 나서는 스타일도 비슷하다.

하지만 차이점도 뚜렷하다. 무엇보다도 경제 분야에서 정책의 일관성 유지라는 점에서 두 사람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듯 하다. 룰라가 전임 카르도수 대통령이 취했던 정책을 이어받아 꾸준하게 밀고 가고 있는 반면 노 대통령은 조흥은행 매각 등 부실기업 처리문제와 두산중공업 노사분규 등 노사문제 접근 등에서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취했다.

룰라의 뚝심을 보여주는 사례. 6월 농민들이 자신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농업개혁을 외치며 대통령궁이 위치한 수도 브라질리아 외곽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을 때 룰라는 단호하게 "노(No)"라고 말했다.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7월 공무원 노조의 시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안 되는 것은 안 된다고 분명히 밝혀야 국민과 정부 사이에 신뢰가 쌓인다"는 것이 룰라의 변이었다.

인사스타일도 확연하게 다르다. 노 대통령이 이른바 코드 인사로 끝없는 논란에 휘말렸던 반면 룰라는 정치적 입장을 가리지 않고 자신이 필요한 인사는 과감하게 기용하고 있다. 또 노 대통령이 여당에서 나와 신당을 창당한 것과 대조적으로 룰라가 야당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연정에 성공한 것도 대조적이다.

취임 100일을 맞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밝힌 연설을 통해 룰라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재야에 있을 때는 보란 듯이 뻐기고 다닐 수 있었다. 책임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권력을 잡은 지금은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고작 4년 임기 동안 모든 것을 달성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미래를 위해 기초를 닦아 나갈 것이다."

/박천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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