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이 정치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국회는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또 정부의 정책은 정당과의 협의를 거치지 않고는 관철될 수 없다. 정당의 기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헌법은 정당에 특별한 의무를 부과하고, 또 특별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유례없이 정당운영자금을 보조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현재 정당이 기대기능을 제대로 수행하며, 정당에 대한 각종 특권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거의 없다.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서 지지 정당이 없다는 의견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히 높다. 정당안팎에서의 계파 간 정쟁으로 자기 자신의 존립기반인 선거법이 위헌으로 치닫는 순간도 인식하지 못했던 정당과 국회가 아닌가.
지난 50년간 우리 정치사에서 정당은 정체성과 안정성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처해 있었다. 냉전구조의 이념적 협소성에서 계급정당은 출현조차 할 수 없었다. 정당은 정변적 정권찬탈의 수습기구로서, 혹은 아무런 이념적 정책적 접근이 없이 정권획득의 목적으로 이합집산을 해왔다.
서구에서 정당은 기원적으로 진보와 보수, 자본과 노동 등 비교적 단순한 의제를 중심으로 형성·발전하였다. 사회구조가 복잡해지고 국가기능이 다양해지면서 기존 정당이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수요를 소화하는 데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은 대부분 빗나갔다. 기존의 정당들은 적극적으로 새로운 의제를 흡수하여 정강정책에 반영하는 신축성과 생명력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정당이 자기혁신을 하는데 외부적 효과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정당이 결코 정치적 영역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해서는 안되며, 다른 정치단체 및 시민단체와 경쟁적인 관계에 있어야 한다. 이러한 경쟁관계 속에서 정당은 개방화, 유연화, 그리고 다원화를 통하여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적응하여야 한다. 사실 계급정당의 경험조차 없는 우리의 정당이 다원화 구조에 적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사실상의 한계가 있을수록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다원적 정치이념이 대표될 수 있도록 비례대표선거제가 확대되어야 한다. 정당 주요 인사의 의석을 확보하기 위하여 현재의 지역구 의석을 유지 혹은 확대하면서 비례대표 의석을 줄이는 것은 정당의 기대기능에 역행하는 대표적인 발상이다. 둘째, 시민단체 등 정당이 아닌 단체에게 적극적인 선거운동의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 헌법의 의도와는 달리 정당에 대한 불신이 보편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당만을 중심으로 국민을 정치화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와 같은 대안적 존재에 대한 헌법우호적 해석이 필요하다.
헌법재판소는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에 대해 합헌결정을 한바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여야 하지만 이 결정이 헌법의 의도에 충실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이후 노동조합에 한하여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선거법에 대해서는 합헌결정이 내려졌다. 이로써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이 일반단체보다는 정당에 가까운 성격을 갖는다고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은 근로조건의 개선 유지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이므로 정당보다는 일반 단체에 보다 가깝다. 따라서 노동조합과 단체에 모두 선거운동을 허용하거나 혹은 금지하는 것이 헌법에 충실한 이해방법이다. 단체도 그 목적을 자유롭게 형성할 수 있다는 헌법적 이유에서, 그리고 그 결과 정당의 개방적인 자기혁신의 효과가 있다는 정치적 이유에서 현행 선거법은 개정되어야 한다. 헌법재판소는 단체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선거법이 합헌이라고 했지만, 이 결정이 단체에게 선거운동을 허용하는 것이 위헌이라는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전 광 석 연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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