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평준화를 깨라고 목소리를 높이시는 분들께 새해 벽두부터 낭보가 터졌다. 독일 사민당 지도부가 하버드나 스탠포드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미국식 엘리트 대학 체제를 도입할 계획이라는 것이다.'그것 봐라, 독일도 학비 공짜에 평준화된 공립대학 체제의 폐해를 뒤늦게 깨닫고 미국식 엘리트주의로 간다지 않느냐? 사민당이 무슨 당이냐? 잘 난 놈이나 못 난 놈이나 똑같이 가자는 사회주의 정당 아니냐?'
권위 있다는 시사주간지 슈피겔이 "좌파의 사고의 전환이자 문화혁명"이라고 평가한 것도 그런 분들의 구미에 딱 맞는 표현이리라.
'우리처럼, 공부 잘 하는 학생이 공부 못 하는 학생과 한 학교 한 교실에 앉아 손해보게 만드는 시스템으로 어떻게 우수한 인재를 기르겠는가. 공부 잘 하는 것이 죄인가? 이런 상태로라면 국가의 경쟁력은 어찌 되겠는가'하며 안타깝다는 표정마저 지을지 모른다.
아닌 게 아니라 국가 경쟁력이 떨어질까 진짜 걱정이다.
그런데… 대개 각계에서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그런 이들은 무슨 경쟁력을, 어떤 종류의 경쟁력을 말하고 있는 것일까?
교육계에 이런 우스개가 돌아다닌 지 꽤 됐다. "뉴튼과 퀴리 부인과 아인슈타인이 한국 땅에 태어났다. 선조들이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될 수 있게 인재를 내려 달라고 간청하자 옥황상제께서 보낸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퀴리 부인은 대학을 나왔는데도 예쁘지 못하다는 이유로 취직이 안 됐고, 아인슈타인은 수학만 잘 하기 때문에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다. 뉴튼은 이과 대학을 나왔지만 별 볼 일 없다며 고시 공부를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무엇이 경쟁력 그 자체라 할 천재들을 이 땅에서는 박제로 만든다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고교 평준화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차떼기, 책떼기로 주먹 한 번 안 쓰고 수백 억을 뜯어낸 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공교롭게도 셋 모두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쟁력 있거나 있었다는 대학과 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들이 경쟁력 있는 인재였을까?
특수한 사례를 특정 학교나 교육제도의 문제로 침소봉대한다고 보시는 독자가 계시다면 이런 유의 굵직한 파렴치범은 일반화가 충분히 가능할 정도의 확률로 세칭 일류 학교를 나온 경우가 많다는 통계적 사실에 주목하셔야 할 듯하다. 그런 인재들 중에는 또 왜 그리 본인이 군대를 빠지는 것도 모자라 자제들까지 못 가게 하는 분이 많은지….
이제 진정한 경쟁력을 키우는 방안이 무엇인지부터 깊이 고민해야 할 때가 됐다. 가난한 아인슈타인이 한국에서 대학에, 그것도 일류 대학에 들어갈 수 있을까?
나는, 굳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도 저 잘나서 또는 부모 잘 만나서 현재와 같은 대학 입시에 딱 맞는 두뇌의 일부 능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는 아이들을 위해 끔찍이도 나서 주시는 분들이, 컴퓨터가 없어서 수행평가 과제물을 육필로 쓴 탓에 낮은 점수를 받는다거나 그 많은 실업계 고교 출신 우리 자녀들이 3년을 열심히 공부하고도 아르바이트생 수준의 월급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든가,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업적이 탁월해도 지방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홀대받는, 이 사회의 참 경쟁력을 뿌리에서부터 갉아먹는 적폐에 대해 평준화 문제의 100분의 1만큼이라도 말씀하시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문제는 진짜 경쟁력이다. 평준화 해제 논의는 그 다음이거나 곁가지이다.
이 광 일 국제부 차장 ki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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