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지 제품이 오래도록 자기 색깔을 잃지않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자연스레 '명품'의 반열에 오른다. 노트북PC에서 이런 물건을 찾는다면, 1992년 첫 출시이래 올해로 13년째 장수하고 있는 IBM의 스테디셀러 '씽크패드'(ThinkPad)가 단연 꼽힌다.씽크패드의 역사는 노트북PC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1989년 등장한 세계 최초의 노트북은 도시바의 '다이나북'(Dynabook)이었지만, 오늘날 노트북PC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많은 기능들이 씽크패드에서 처음 시도됐다. 컬러 화면, 14인치 대형 화면, 티타늄 소재의 슬림한 외형, 착탈 가능한 외부 드라이브, 그리고 PDA나 태블릿PC 등에서 일반화한 필기체 인식이 가능한 화면도 모두 씽크패드의 유산이다.
씽크패드는 다른 노트북PC와 구분되는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짙은 검정색 박스에 경사지게 깎아 놓은 앞쪽 끝, 오른쪽 귀퉁이를 차지한 IBM의 로고 등 판에 박힌 씽크패드의 디자인은 1992년 독일출신의 세계적 디자이너 리차드 새퍼가 고안한 이후 단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키보드 한 가운데 자리잡은 빨간색 버튼(트랙포인트) 역시 씽크패드의 트레이드 마크다. 문지르고 두드리는 것으로 마우스의 기능을 대체하는 터치패드에 비해 불편하게 느껴지지만, 일단 익숙해지면 힘조절에 따라 마우스 포인터의 속도를 자유자재로 조정할 수 있고, 타이핑을 할 때 엄지손가락이나 손바닥이 닿아 오작동을 하지 않는 것이 장점이다.
가장 강렬한 씽크패드의 상징은 1995년 선보인 '버터플라이 키보드'다. 키보드의 절반을 계단식으로 나누고 서로 엇갈려 접히도록 해, 노트북PC의 좁은 공간에 데스크톱PC와 같은 크기의 키보드가 들어간다.
화면을 열면 좌우로 밀리면서 마치 나비 날개처럼 펴진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1995년 첫 선을 보인 이 키보드는 노트북 화면이 14인치대로 커지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졌지만 여전히 인체공학 디자인 혁신의 표본으로 거론되며, 미국 뉴욕 현대 미술관에도 전시돼 있다.
씽크패드는 1993년부터 미국항공우주국 나사(NASA)의 공식 장비로 채택돼 우주 왕복선에도 탑재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서는 LG전자와 IBM의 합작사인 LGIBM이 판매하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 약 2,000만대가 팔려 나갔다.
/정철환기자 ploma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