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니동에 있었던 실험극장은 지금은 사라졌다. 그러나 그 말썽 많았던 극장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1992년 나는 '신의 아그네스'로 운니동 실험극장 무대에 섰다. 그 해 4월부터 10월까지 그 퇴락한 장소에서 나는 '신의 아그네스'에 등장하는 수녀로 살았던 것이다. 실험극장은 운현궁의 한 모퉁이에 있는 가건물이었다. 운현궁 안채 쪽에는 우리나라 왕족의 후손 한 사람이 살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미국에서 실어왔다는 개는 시도 때도 없이 짖어댔다. 처음엔 한참 심각하게 연극을 하고 있을 때 그놈이 짖으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개 소리 때문에 연극 못 하겠다. 누구 저 개 좀 치워달라! 우리는 고함을 쳤다. 연출가 윤호진도 저 놈을 그냥 잡아서 개장국을 끓여 먹을까 보다,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러다 점점 개 소리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수녀원에서 개를 기를 수도 있잖아? 저 개 소리는 이 연극의 효과음이야.극장 뒤에는 카센터도 있었다. 거기에도 강아지가 있었다. 그 강아지가 짖는 소리는 영락없는 하룻강아지였다. 그래서 그놈이 짖어댈 땐 연극의 격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다. 가끔 누가 발길질이라도 하는가 싶으면 자지러지게 울기도 했다. 어떤 때는 운현궁의 개와 카센터의 강아지가 듀엣으로 짖기도 했다. 그때 속으로 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야, 이건 완전히 개판이구나. 그렇게 우리는 개들의 합창 속에서 그 여름을 보냈다. 미운 정만 든 그 개들에게 신의 축복이 있기를.
어떤 때는 조명에서도 소리가 났다. 배우에겐 어떤 아름다운 음향도 무대 위에서 필요한 소리가 아니면 소용이 없다. 효과음 이외의 소리가 얼마나 배우를 피곤하게 하는지. 균형은 깨져버리고 페이스를 잃고 만다. 배우가 아니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마침 극장 앞에서 도로공사를 하고 있었다. 굴착기로 땅을 파는 소리는 너무 끔찍했다. 개 짖는 소리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제발 공연 중에는 공사를 멈춰달라고 절규했지만 그들은 시에서 하는 거니까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 날은 살인적 굴착기 소리를 백사운드 삼아 공연을 마쳤다. 배우들은 모두 신경질적이 되어 버려 모든 대사마다 고함을 질렀다. 수녀원장, 닥터, 아그네스 셋이 번갈아 가며.
소음만 우리를 괴롭힌 건 아니었다. 실험극장의 여름은 아프리카에서 수입해 온 것 같았다. 여름에 거꾸로 '난방'(?)이 잘 되는 극장만큼 사람 잡는 게 또 있을까. 에어컨을 틀면 쉽게 해결될 일이었지만 그놈의 소음이 또 문제였다. 고물 에어컨이 돌아가며 내는 비명 같은 소리가 너무 시끄러웠다. 연기를 못할 정도였다. 배우가 목청을 돋구어 소리를 지르면 되겠지만 어떻게 사람 소리가 기계음을 이길 수 있나? 더욱이 나는 에어컨 웅웅 거리는 소리가 너무 싫었다. 차라리 땀을 흘리고 말지, 어떻게든 참는 거지 뭐.
그러나 삼복에 나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연극 시작 한 시간 전에는 에어컨을 최대로 틀었다. 그러나 그건 잠깐이었다. 관객이 차고 배우가 무대에 서면 극장은 다시 온장고가 돼 버렸다. 나는 에어컨 작동 콘티를 짰다. 공연 전엔 에어컨을 틀었다가 오프닝과 배역들이 소개되는 장면에서는 에어컨을 껐다가, 1막이 끝나고 2막이 시작되기 전 막간 5분 동안에 다시 틀고, 2막 후반에 다시 틀고. 에어컨을 켰다가 끄면 그 소음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실감이 났다. 고요가 얼마나 감사한지 연극이 저절로 될 지경이었다.
그렇게 소음과 더위로 우리를 쉴새 없이, 그리고 악착같이 괴롭혔던 운니동 실험소극장은 운현궁 복원 사업과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애석했다. 우리가 소음을 이기기 위해 목청 높여 내질렀던 대사와 한여름 뻘뻘 흘린 땀을 증명해줄 그 무엇이 사라졌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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