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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고대史 전쟁]<2> 고구려 유적도시 지안(集安)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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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中 고대史 전쟁]<2> 고구려 유적도시 지안(集安)을 가다

입력
2004.0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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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27일 오전 10시20분 중국 동북지역 교통 요지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공항. 사단법인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주최한 '국내성 천도 2000주년 기념 고구려 역사유적 답사'에 참가, 국내 학자 등 23명과 함께 막 공항에 내렸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이 쟁점이 되고 있는 시점에 고구려 유적을 둘러본다는 각별한 의미에 가슴이 설레었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곧 불안으로 바뀌었다. 지린(吉林)성 당국이 전날 회의를 열어 우리 답사단 문제를 논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이다. 압록강 이북에서 가장 웅장하게 남아있는 고구려 산성인 선양 남서쪽 번시(本溪) 인근의 백암성 답사 계획이 바로 취소됐다. 유적 발굴·정비 이후 매표소를 설치해 관광객을 받고 있는 지안(集安)이나 환런(桓仁)의 고구려 유적과 달리 백암성은 외국인 미개방 유적이었다. 일행은 중국 당국이 답사단을 통제할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고구려 유적 연구·조사까지 차단

답사단은 계획을 바꿔 그날 선양 시내 청나라 유적 몇 곳을 둘러보고 바로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만주 벌판의 밤공기를 뚫고 7시간을 달려 새벽녘에 도착한 곳은 지린성 퉁화(通化). 지안행 전세버스로 바꿔 탄 우리는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인 국내성과 광개토대왕비, 장수왕릉 등 전성기의 고구려 유적을 볼 수 있다는 기대로 다시 들뜨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답사 역시 순조롭지 못했다. 지안시 당국이 현지 안내원에게 한국인 답사단의 지안박물관 관람, 유적 답사를 일절 불허한다고 통보했기 때문이다. 답사단이 중국행 비행기를 탈 때까지도 듣지 못한 얘기였다. 게다가 전날 다른 한국인들은 아무 문제 없이 유적을 둘러보았다는 것이 아닌가. 9월 초 국제기념물유적회의(ICOMOS) 실사가 끝나고 중국 당국이 고구려 유적지를 전면 개방한 이후 이번 답사단 규모가 제일 큰 데다 고구려 전문가가 다수 포함돼 있어 중국 당국이 민감하게 여긴 게 분명했다.

전세버스가 퉁화에서 지안으로 향하는 동안 승용차 한 대가 미행했고, 지안 시내 호텔에 답사단이 투숙한 후에도 중국 기관원으로 보이는 감시원이 계속 답사단을 따라다녔다. 중국 당국의 어처구니 없는 처사에 거세게 항의했고 그 결과 그날 오후 겨우 장수왕릉, 광개토대왕비, 태왕릉, 환도산성 및 국내성 성터 방문이 허용됐다. 하지만 사진 촬영과 유적에 대한 답사단의 자체 설명은 금지됐다. 유적마다 배치된 현지 안내원을 제치고 동행한 지안박물관 직원의 간단한 설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말끔하게 정리된 고구려 유적

지안 시내의 고구려 유적은 상당히 공을 들여 일제 정비한 흔적이 역력했다. 1년 전까지도 있었다는 장수왕릉 인근의 군부대, 광개토대왕비와 태왕릉 주변 400여 호 민가는 완전히 사라졌다. 서쪽에서 지안시를 감싸고 흐르는 통구하 변 국내성 서벽 주변에 있던 300여 채의 공동주택도 지난해 3월 이후 몇 달 사이에 완전히 철거됐다. 서길수 회장은 "아파트까지 이렇게 재빨리 철거한 것은 중국이기에 가능하다"고 말했다.

20년도 더 된 비각을 새로 고치고 방탄유리까지 설치한 광개토대왕비 주변에는 감시원 4명과 감시견 4마리가 배치돼 있어 살벌한 분위기마저 감돌았다. 유적마다 사진 촬영·입장 금지 표지가 중국어와 영어로 나란히 적혀 있었다. 서 회장은 "지안시는 최대 3억900위안(584억원)을 들여 지난해 3∼9월 고구려 유적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며 "소득 격차나 물가를 감안하면 5,000억원 정도는 된다"고 말했다. 특히 큰 걸림돌인 주민 이주 문제를 일사천리로 진행하기 위해 국내성 안에 있던 시 인민정부(시청) 건물부터 철거했다고 한다.

전시물의 90%를 새 유물로 채웠다는 지안박물관은 외관만 봐도 새 단장한 태가 역력했다. 9월에 ICOMOS 조사관으로 지안의 고구려 유적·유물을 실사한 니시타니 다다시(西谷正) 일본 규슈(九州)대 명예교수가 봤다는 태왕릉 출토 호태왕(好太王) 명문의 바늘도 박물관의 새 전시물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이 새는 곳이 있어 보수 중이라 관람할 수 없다"는 박물관의 궁색한 변명을 듣고 답사단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유물을 전시하는 박물관에 물이 새다니"하고 실소하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유적 보존에 문제 있어

지안 유적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전반적으로 정비 상태가 좋지만 몇 가지 문제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문화재 보존학 전공인 안병찬 경주대 교수는 "광개토대왕비를 유리로 둘러 막을 경우 기온이 높아지는 여름에 환기가 안되면 외부보다 온도가 올라가 비석에 치명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비각은 환풍을 위해 지붕 아래 20㎝ 정도의 폭으로 사방을 뚫어 놓았지만 그것으로는 여름철 고온을 식히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안 교수는 "현재 상태라면 여름철 비각 내부 온도가 바깥보다 5도 정도 높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성 성벽 복원이 잘못됐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2,002m에 이르는 전체 성벽 가운데 가장 눈에 띄게 정비된 서벽(799m)의 북쪽에서 성벽이 서로 어긋나 맞물리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 회장은 "1915년부터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평면도에는 지금 어긋나게 복원된 부분이 죽 이어져 있고 문이 있었다"며 "1927년 국민당 정부에서 수리하면서 잘못된 것을 그대로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답사단을 계속 따라다닌 지안박물관 고참 직원 리후이(李徽)씨에게 넌지시 "지안의 고구려 유적이 올해 6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것 같느냐"고 물었다. "그건 제 소관이 아니라서 모르겠습니다." "북한의 고구려 고분도 중국 유적과 함께 심사 받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모릅니다." 경계의 눈빛이 역력했다.

/지안=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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