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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욕하면서 왜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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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욕하면서 왜 보는가?

입력
2004.0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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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아버지가 매달 '만다링'이란 중국 음식점엘 데려가셨다. 우리 식구의 가장 멋진 외식 코스였다. 옷을 갈아입으면서부터 타고 가는 버스에서까지 오늘은 뭘 먹을까 재잘재잘 얘기하곤 했다. 그런데 막상 가면 늘 시키는 게 탕수육과 부추 잡채였다. 그래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집에 오는 길에는 항상 다음엔 다른 걸 먹어 보자고 얘기한다.드라마 보는 일도, 만드는 일도 그렇다. 매번 보던 것, 만들던 것에 익숙해 있다. 지난달에도 하고 작년에도 했던 스토리인데 조금만 맛있게 버무려 놓으면 손님이 많이 찾는다. 그러고 보면 요리사의 가장 큰 숙제는 새 요리를 개발해 내는 것이라기보다 사람들이 자주 찾는 요리를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더 새롭게 만들어 내느냐이다. 마찬가지로 드라마 PD가 고민해야 할 가장 큰 과제 역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얘기, 수도 없이 반복한 그 얘기를 어떻게 더 재미있게, 더 새롭게 만들어 내느냐가 된다. 이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드라마가 만들어졌으면 한다는 데 반대할 시청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매번 그들이 찾는 요리는 뻔하다. 손님이 다들 뻔한 메뉴를 찾는데, 어느 주방장이 새로운 요리를 개발하려고 애쓰겠는가. 누구나 다 하는 요리를 남들보다 더 잘 하는 것도 물론 어렵지만 새로운 요리를 상상하고 개발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그런데 먹어 봐 주는 사람마저 없다면 결과는 뻔하다.

입사 이래 8년 동안, 시청자 스스로가 식상하고 뻔하다고 욕하는 드라마 중에서 시청률 잘 나오는 드라마를 수도 없이 봤다. 도대체 왜 욕하면서도 보는 건가? 기대할 것 없는 드라마는 보지 말자. 그 시간에 다른 취미를 즐기거나 그도 아니면 잠이나 자자. 그것이 '정말 새롭고 기대할 만한 드라마'를 만들어 내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이 재 규 MBC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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