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말 신규 전력공급은 힘들다." "책임을 주민에게 떠넘기지 마라."경기 성남시 분당신도시의 전력대란이 코앞에 닥쳤다. 4월부터 백궁·정자지구에 1만 2,000가구 입주가 시작되고, 입주 전 2개월간의 준공검사 관련 각종 검사가 이뤄져야 하는데 신규 전력을 공급할 변전소가 없기 때문이다. 부지로 정한 정자동 시유지(1,400평)는 '건강권 침해'를 앞세운 입주자들의 반대로 삽 한 번 꽂지 못하고 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건 한국전력이다. 올해 입주를 앞두고 우후죽순 들어선 백궁·정자지구 대규모 주상복합 아파트와 건물 28곳이 4월 초까지 총 7만7,750㎾의 전력 공급을 신청했지만 한전은 "그 양이면 2만6,000여 가구가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현 설비로는 불가능하다"며 난색이다. 한전은 4월 말부터 파크뷰(1,829가구) 등 주상복합아파트와 오피스텔 1만여 가구의 입주 일정도 줄줄이 잡혀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력을 못 준다고 통보해둔 상태. 임시 변압기라도 둘 계획도 있지만, 이 역시 주민 설득이 선결과제다. 신규 건물은 입주 두 달 전에 전력이 들어와야 소방검사, 난방검사, 하자보수 등을 마칠 수 있다. 따라서 전력대란은 자칫 입주대란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다.
변전소 부지와 75m 떨어진 파크뷰 등 입주 예정 주민들은 "설마 전기가 안 들어오겠느냐" "건강 문제를 타협할 수 없다"며 입장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다. 부지가 금곡동에서 백궁·정자지구로 바뀐 것도 못마땅한 표정이다. 입주예정자 박모씨는 "기반시설을 제때 갖추지 못한 성남시와 공공재인 전력을 공급하면서 종합대책을 세우지 못한 한전이 책임질 일"이라고 성토했다. 다른 입주예정자는 "탄천 수질오염, 소음에 전자파까지 겹치면 백궁·정자는 오염지구가 될 판"이라고 주장했다.
이사 일정에 맞춰 입주해야 하는 중·소형 평형대 실입주자들의 사정은 딱하다. "전기가 안 들어와 이사를 못하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하느냐"는 것이다. 주부 이모(34·분당구 운중동)씨는 "혐오시설이라지만 전기가 끊기면 제 발등 찍는 격"이라며 불안해 했다.
분당의 전력대란은 각종 수치가 증명하고 있다. 한전이 백궁·정자지구의 전력 수요(4만8,000㎾)를 예측해 지난해 7월 야탑변전소에 임시 설치한 5만4,000㎾짜리 변압기 한대론 어림도 없다. 정자변전소(용량 10만8,000㎾) 설립이 늦어지면 백궁·정자지구뿐 아니라 분당 전체 전력 수급계획 차질로 이어질 판이다.
현재 분당지역 전력 최대공급량은 분당·야탑변전소 등 2곳에서 54만㎾ 수준. 지난해 시간당 최대 수요전력이 41만4,000㎾(85%)로 이미 '예비전력 25%'의 변압기 운영기준을 넘어섰고, 올해는 51만㎾(94%)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 6월에는 전력 과부하로 인해 9.000가구 전력 공급이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한전 관계자는 "변전소가 각각 7,9개인 서울 서초와 강남구에 비해 분당 전력사정은 위험수위"라며 "전력수요가 폭증해 변전소를 짓더라도 바로 추가 변압기 설치 등 증설계획을 잡아야 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변전소 문제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1996년 한전이 분당구 금곡동에 변전소를 지으려다 주민 반대에 부딪쳤고, 2000년 10월 성남시의 요청으로 부지를 당시 민원 소지가 없던 현 위치로 잡았다. 하지만 파크뷰 입주 예정자들이 뒤늦게 '변전소비상대책위'를 꾸려 반대투쟁에 나섰고 성남시 역시 '시설 완전 지하화'를 내세우며 건축허가를 반려했다.
한전은 "송전선이 이미 지중(地中)에 깔려 있는 상태에서 부지를 바꾸면 공사기간이 5년 이상 더 걸려 전력 부족 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며 지난해 9월 성남시의 건축허가 반려를 취소해 달라는 심사청구를 감사원에 냈다.
/성남=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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