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가 서울시를 상대로 제기한 3만9,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판공비 내역 등 정보 공개 소송에서 법원이 자료 열람 뿐만 아니라 자료를 직접 복사해 주도록 판결해 파장이 예상된다. 이번 판결은 정보공개에 소극적인 공공기관의 관행에 대해 법원이 '행정편의'보다는 '국민의 알 권리'와 '국정운영의 투명성'을 우선시해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이어서 주목된다. 그동안 공공기관들은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상 정보공개 제한 사유인 '정상적인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를 근거로 선별적인 자료 열람만 허용하고 복사나 교부는 허용하지 않았다.서울고법 특별5부(이우근 부장판사)는 4일 참여연대가 "사본 열람만 허용하고 복사·교부를 해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며 서울시를 상대로 낸 사본공개거부 처분취소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
앞서 서울시측은 "다른 단체나 시민들이 계속해서 방대한 양의 복사를 요청해 올 경우 행정력의 막대한 낭비가 발생하고 유출된 자료의 오·남용이 우려된다"며 참여연대의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각 부서별로 정보를 나눠 보관하고 있어 복사할 정보의 양이 많다고 볼 수 없으며, 열람만으로는 공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자료를 열람할 때도 담당 공무원이 옆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복사해 주는 것과 비슷한 인력과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업무수행에 현저한 지장을 초래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판결을 내리기 전에 양측에 조정을 권고했으나 서울시측은 "청구량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특정기간 자료에 대한 일괄 교부의 방법으로는 정보공개 청구에 응할 수 없다"는 입장을 재판부에 전달했다. 이에 따라 재판부는 "정작 서울시가 문제 삼는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정보의 유형이나 성격으로 보인다"며 "공공기관은 정보공개 방법을 선택할 재량권이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지난해 3월 대법원 판례에 따라 "개인의 신상에 관한 정보나 서울시가 직접 보관하고 있지 않는 정보에 대해서까지 공개할 의무는 없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는 2000년 6월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운용을 감시할 목적으로 서울시에 2000년 1월부터 6월까지 지출한 업무추진비의 집행과 지급, 관련 증빙서류 등을 복사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서울시측이 열람만 허용하자 소송을 냈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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